중요한 보고가 끝난 24일, 힘이 풀린 채 밤을 보냈습니다. 크리스마스 25일, 느지막이 운동을 하고 미루어왔던 사우나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맡깁니다. 노곤하게 풀어지는 기운 속에 지난한 한 해를 돌아봅니다. 시간은 참 빠른데 유난히 12월은 길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올해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사우나여서였을까요. 나오고 나서 몸이 쳐지고 걸음이 느려집니다. 급한 성격 탓에 늘 빨리빨리 행동하던 제가 얼마나 여유롭게 움직이던지 조금은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그저 노곤한 탓에 느려진 것인데 마치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를 두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꽤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날들이다 보니 성격은 물론 행동도 급했습니다. 매일이 전쟁 같다는 생각, 여유로운 구석은 하나도 없이 쫓기듯이 했던 업무들이 매일매일 가득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를 너무 옥죄고 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행동이 느려지니 마음이 여유로워지더군요. 다음 날 저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백화점에 가 여러 옷을 구경하고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습니다. 천천히- 옷 하나하나 재미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둘러보고 또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을 들었습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 차분한 저의 행동과 마음은 그간 절 괴롭혔던 쫓기던 무언가를 잊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건 술보다 더 크게 저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조금은 더 여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충분한 자금도 없고 창창한 미래도 없지만 당장 지금은 한 끼 식사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고 또 좋은 향기의 카푸치노 한 잔을 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으니 급할 게 없습니다.
느리고 여유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어찌나 급하게 지나쳐왔는지 지금은 잊었던 작은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장 일요일 날 재즈 공연 하나를 예약했습니다. 그것도 일요일 밤의 찬 공기를 마시며 혼자 보러 갈 예정입니다.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말이죠.
새로운 한 해가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올해 제가 했던 가장 좋은 것 2가지 중 하나는 드디어 영상을 찍어서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여유로워지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올해는 잘 보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진짜 어른이 된 느낌, 그리고 내가 해내고자 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느낌이거든요.
마음이 급하실 때는 조금은 돌아가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산책을 하되 천천히 걸어주세요. 빨리 걷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천천히 걸으며 나의 호흡을 느껴보고 이해하는 것, 제가 경험했던 올해의 최고의 경험입니다. 여유로운 일상의 소소한 행복, 결국 우린 이것을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