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진다.
사람마다 선택에는 고유한 기준이 있습니다. 저는 옷을 고를 때 가능한 한 천연 소재를 우선합니다. 소재가 가진 밀도와 질감은 옷의 역할을 또렷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도 형태와 인상이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슈트는 울, 팬츠는 코튼, 코트는 울과 캐시미어처럼요. 기능이 먼저인 화섬 소재를 제외하면 이 기준은 거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죽점퍼는 더 까다롭게 보게 됩니다. 요즘 인조 가죽의 완성도가 좋아졌다고 해도, 결국 내구성과 촉감, 그리고 특유의 ‘가벼운’ 인상은 제가 원하는 가죽의 결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저는 가죽이 가진 무게감과 시간의 흔적까지 포함한 물성을 좋아합니다. 오래 입을수록 깊어지는 그 감각이야말로 천연 가죽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톤(mouton, 일명 무스탕) 은 늘 선택하지 못하고 미뤄왔습니다. 가격이 높을수록 선택은 더 신중해지고, 한 번 살 때 제대로 된 한 벌을 갖고 싶어 지니까요. 여러 브랜드를 입어보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가격이 가능해도 어딘가 아쉬운 지점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패션을 즐긴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저는 무톤 한 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금요일, 교외 쇼핑몰의 도심형 아울렛 매장에서 우연히 시선이 멈췄습니다. 솔리드 옴므*의 무톤이었습니다. 무톤 특유의 볼드하고 러프한 에너지를 과하게 과시하지 않고, 모던하게 정리한 균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베이지 톤 바탕에 브라운 절개 가죽이 덧대어져 컬러의 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안쪽 퍼는 과하지 않은 털의 길이가 부드럽게 흐르더군요. 무엇보다 100 사이즈, 딱 한 점만 남아 있었습니다.
입어보니 제게는 분명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만 무톤은 원래 여유롭게 입을 때 멋이 살아나는 아이템이고, 두툼한 니트와 함께 레이어링을 생각하면 ‘크기만 한’ 핏은 아니었습니다. 거울 앞에서 스타일링을 상상하다가 가격표를 보고 잠시 멈췄습니다. 298만 원에서 89만 원. 제조년은 2022년, 약 4년 전 제품이었습니다. 천연 가죽 무톤은 관리만 잘하면 10년은 충분히 버팁니다. 상태를 꼼꼼히 확인해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고민의 핵심은 단순했습니다. ‘오늘 바로 사기엔 큰 지출’이라는 현실과, ‘한 점 남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 사이였죠. 저는 상품 기획을 하며 무톤을 발주해 본 경험이 있어 대략적인 원가 구조도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 할인가가 다시 나오기 어렵다는 것도요. 결국 저는 구매를 선택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보낸 금요일 저녁, 사람이 거의 없는 아울렛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과 컬러, 그리고 납득 가능한 가격대의 무톤을 만난 일은 묘하게도 운명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침 최근에 잘 입지 않던 고가의 옷 두 벌을 정리했습니다. ‘좋은 것을 하나 제대로 사야지’라고 생각했던 타이밍에, 기회가 너무 빠르게 찾아온 셈입니다.
결국 좋은 옷은 가만히 기다린다고 오지 않습니다. 직접 보고, 입어보고, 자주 관찰해야 합니다. 수많은 옷들 사이에서 ‘진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번 무톤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 준 선택이었습니다.
*솔리드 옴므 : 1988년 서울에서 시작된 한국의 대표적인 컨템퍼러리 남성복 브랜드로, 뛰어난 재단과 미니멀한 디자인, 고급 소재 사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영미 디자이너가 이끈 클래식과 모던을 결합한 옷은 도시적인 감각과 착용성을 갖추며 국내외에서 꾸준한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시즌을 초월하는 워드로브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확장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아래 해당 아이템으로 스타일링한 영상을
첨부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TdKoLegVAJ/?igsh=MXZ2OWhmOGdmd2VuO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