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냄새를 맡는 법.
진짜 책의 냄새를 좋아한다. 거기엔 활자가 인쇄된 냄새와 종이의 냄새가 적당히 섞여 기분 좋은 긴장을 만들어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그 텁텁하면서도 서늘한 향기는, 단순히 정보를 읽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매일같이 '새것'을 쏟아낸다. 더 얇아진 태블릿, 더 빠른 인터페이스, 그리고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클라우드 속의 데이터들. 나 역시 그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지만, 가끔은 그 매끄러움이 못내 허전할 때가 있다. 손끝에 걸리는 저항이 없고, 코를 자극하는 물성이 결여된 디지털의 세계는 지나치게 깨끗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세련됨보다는 익숙함에, 매끄러움보다는 거친 질감에 더 마음을 내어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것을 '올드하다'고 말하거나 '클래식'이라는 근사한 단어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저 '흔적'의 문제다.
오래된 책방의 서가 사이에 서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등, 빛이 바래 노랗게 변해버린 종이의 가장자리,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옛날 서체의 투박함. 그 안에는 만드는 이의 고집과 읽는 이의 기다림이 서려 있다. 잉크가 종이 속으로 스며들어 완전히 하나가 되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이 만들어낸 특유의 냄새는 어떤 향수로도 재현할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문장이다.
아날로그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닳고, 바래고, 마침내 향기만을 남긴 채 사라져가는 것들. 실체가 있기에 상처가 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답고, 손에 잡히기에 소중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밤거리는 여전히 화려한 전광판으로 번쩍인다. 하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책 속에 코를 묻는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이 묵직한 냄새. 이 오래된 향기야말로 내가 세상을 감각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결국 아날로그가 이긴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