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두물머리 여행

1부 시작하며 - 2022.01 양평

by micn


주형이는 이번 주도 캠핑이다.

무엇이든 한 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친구가 캠핑에 빠지더니 엄청난 기세로 주말들을 소화 시키고 있다.


그는 함께 할 구성원을 구하고 있었고 이번 주말은 윤근호와 내가 선택되었다.


나는 1박 2일 여행자에게 2박 3일이라는 색다른 계획을 입력했다. 성공적이었다.

친구들과 2박 3일 캠핑을 계획한다.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 등 알뜰하게 준비하느라 제법 시끄럽다.

서로가 계획에 살들을 붙여 가며 다가올 주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계획의 원안자인 나는 그들을 버리고 2박 3일 중 단 1박 2일만 캠핑을 다녀왔다.


남들은 변덕이라 부르는 내 마음 때문이었다.


-


분명 해가 떠 있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세상 모든 곳이 차분하다.


하얗지만 눈이 부시지 않는 해를 기준으로 점점 회색이 퍼져나간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하얀색 곡선들이 자리를 잡았다.

호수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그려낸 선들이다.

이제 다른 색을 칠해보자.

주변부에 수풀과 나무를 그려 넣는다. 다만 그 양을 적게 하여 쓸쓸함을 더한다.

전체적으로 물을 가운데로 배치하여 구도에 중심을 부여한다.

멀리 형태만 보이는 산맥을 배치함으로 적당한 원근감을 준다.

장면 속에 서 있는 내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카메라 뷰파인더로 물안개를 바라본다.


아련함이 더 돋보이게 노출을 길게 설정한다.

흑백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셔터에 손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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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서 자리에 앉았을 때 떠오른 그림이다.


떠오른 이미지의 계기는 모르겠지만 점점 더 선명해진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사진을 찍어 본 적은 없었기에 머릿속 스쳐 지나간 그림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막연한 내 상상이 그려낸 그림에서 나룻배까지 나온 시점에서

이번 주말 내가 만들어낸 계획으로 시간이 없음을 떠올렸다.


조심스레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내가 합류하겠다는 이야기했다.


의외로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아무도 섭섭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내가 더 섭섭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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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으로 나에게 금요일 저녁, 토요일 아침이라는 시간이 다시 주어졌다.


다시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일단 검색 창에 물안개 명소를 입력한다.

출발은 회사 퇴근 직후, 촬영 이후 친구들이 있는 용인의 캠핑 장으로 가야 한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호수 명소들은 그렇게 제외되었다.

남은 건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의 촬영 명소들이다.


근데 사실 답은 아까부터 정해져 있는 듯하다.


물안개를 치자마자 나온 두물머리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십여 분을 더 검색한 후 의미 없음을 판단하고 두물머리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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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양수리의 순우리말이다.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북한강과 태백시에서 시작한 남한강이 합쳐지는 구간이다.

두 물이 머리를 맞댄다는 의미로 두물머리가 되었다. 장소만큼이나 이름도 아름다운 곳이다.

과거에는 물류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육로의 개발로 현대에 와서는 나루터 기능조차 상실된 상태다.

다만 과거 지역 나루터 시절보다 지금 관광지로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정도면 나루터를 잃은 두물머리도 섭섭하지 않을 거다.


-


기념비적인 새해 첫 여행은 당일을 포함해 업무로 너무 괴로웠다.

자원의 부족에서 오는 걸림돌로 장비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이 나를 둘러싼다.

여행 일이 나에게 다가올수록 정도를 모르고 꼬여가는 상황 속에 살고 있었다.


출발 전 양평에서 먹을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준비한다.

저녁을 먹을 곳을 찾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피곤하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까지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일의 부담이 머리에 가득했다.


내비게이션은 나를 영동고속도로로 안내한다. 출퇴근으로 반복되는 길. 그곳을 벗어나자 조금씩 신난다.

차에 속도가 붙을수록 흥이 일 생각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를 얽매고 있던 코드들이 한 줄 한 줄 풀린다.

풀린 코드들이 날아가는 잔상까지 보일 정도다. 점차 풀리는 마음은 주변을 비추기 시작한다.

시야가 넓어짐에 나와 동행하는 차들이 보인다.


저 차들도 이 저녁에 여행 가는 걸까?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이 도로 위에서 달리고 있겠지.


지나가는 차들마다 흥에 젖은 내 여행 감정을 입혀준다.

붉은 물결 속에서 신나는 감정 넘어 상쾌함을 느끼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회사와 멀어질수록 내 마음은 높이 높이 날아오른다.


-


나름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사람이 있다.


여섯 명 정도, 각자 다 모르는 사람들인 듯하다. 근데 일행처럼 일렬로 한 곳을 향해 서 있다.

나 또한 그들 옆에서 일행인 듯 삼각대를 설치한다. 카메라와 같은 시선으로 강을 바라본다.


얼어붙어 있는 강 위로 짙은 남색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 멀리 강 건너편 산맥 사이에서는 주홍의 빛이

퍼져 나온다. 산맥에서 넘쳐흐른 붉은빛들은 얼어붙은 강물이 머금는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의 강 왼쪽에는

버드나무가 서 있다. 해가 떠오르는 곳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나무는 수없이 많은 일출을 봐왔기에

이제는 감흥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아 보인다.

의연함이 느껴지는 나무를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연습 삼아 사진을 몇 번 찍는다. 찍힌 사진을 몇 번이나 본다. 이리저리 화각을 돌려본다.

이내 체념하고 표준렌즈에서 광각렌즈로 교체한다.

넓은 화각의 광각렌즈는 사진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낸다.

그에 비해 표준렌즈는 그보다 좁은 화각으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진다.

내가 평소에 표준렌즈나 망원렌즈를 선호하는 이유다.

실력이 좋지 않으니 많은 것을 조화롭게 담아내야 좋은 사진이 나오는 광각렌즈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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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오늘은 광각렌즈로 촬영해야 한다.

조화를 논하기 이전에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모조리 담아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일출은 지났다. 산 뒤쪽의 수평선을 해는 이미 떠났다.


주변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하늘은 점차 밝아졌지만, 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강바람이 매섭게 일자 새벽녘의 추위는 더 심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단화를 신고 온 내가 원망스럽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올려놓은 오른손의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아까부터 움직이지 않는다.

장갑을 끼고 있지만 의미가 없었다. 손가락을 녹이기 위해 이리저리 난리 치고 있을 때 산 위로 해가 보인다.

주변 모두 소음이 사라졌다. 대신 모두 들 셔터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


-


햇빛에 맞서는 나무.

세찬 바람에 서 있는 나.


순간 내 감정을 나무에 이입시켰나 보다.

구도를 해와 나무의 대립을 담아내기 위해 변경했다.

얼어붙은 강물은 단지 햇빛을 위한 반사판 역할로 사용했다.


몇십 컷의 사진을 더 찍자, 해는 이제 충분하다며 하늘로 올라간다.

하지만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찍지 못한 장면에 미련이 생겨서다.

셔터 위에 손을 다시 올린다. 오른손은 추위에 얼어버렸다. 손가락이 아닌 손목 힘으로 두세 컷을 찍었다.


나무는 그런 바보 같은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내가 시선을 돌렸을 때 나무는 당연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오늘의 촬영은 여기까지란 생각은 나무의 표정 때문이었다.


무심한 그 표정에 삼각대를 접었다.


남은 미련은 다음에 다시 올 두물머리에 남겨둔다.

의연한 버드나무는 인사 없이 떠나는 나를 이해했을 거다.


미리 찾아온 오래된 가게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주문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이 집에서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웃으며 해장국을 내주었다.


펄펄 끓는 생각 속의 해장국과는 다르게 차분한 해장국이다.

선지는 수북이 쌓인 내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추기름과 짙은 국물의 색에서 본고장 양평 해장국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다.


삼십 분 전 강바람에 얼어붙었을 때를 생각하며 국물을 맛본다.

오는 차 안에서 몸을 녹였다면 이번엔 마음을 녹인다.

국물 한 숟가락에 성공적인 오늘의 촬영을, 게으르지 않았던 나를 칭찬한다.

대견한 나에게 다시 한 입을 넣어준다.


밥을 말아 한 숟갈.

짠지 올려 한 숟갈.


이제 캠핑 장으로 목적지를 설정한다. 뽑아온 커피를 차 안에서 마신다.

여행의 시작은 일로 너무 힘들었다. 숙소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오래되어 놀랬다.

물안개를 찍기 위해 찾은 두물머리지만 얼어붙은 강물이 허락을 안 했다.


그런데도 기분은 좋다.

계획에는 없던 요소들이 있어 내 성공적인 새벽 여행이 완성되었다.

기대와는 전혀 다른 성과가 만족을 불러왔다.


두 개의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 계획과 돌발이 섞여 있던 나의 여행, 무엇을 얻으려고 시작한 여행은 아니다.

하지만 자꾸 의미가 부여된다. 성공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나를 고양 시킨다.


마치 여행이 나에게 선물해 준 기분이다.


생각지 못한 선물 덕분인지.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는 길이라 그런가.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한 편으로 두물머리에 두고 온 미련이 떠오른다.

묻어 둔 미련을 가져오기 위해 다음 계절의 두물머리를 생각하며 나는 양평을 벗어난다.




2022.01.08.


2022년 새해 첫 여행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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