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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rocosm Jul 12. 2021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

⑤ Netflix <런 온> 13~15화를 보고 쓰다.

코로나가 한창이다. 일년이면 이 상황이 마무리될까 싶었는데 아직이다. 코로나를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는 나와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구나 느끼기도 한다. 예방수칙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 이런 때는 지키고 저런 때는 안 지키는 사람, 코로나 따위 걸릴 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러 가지 모습이다. 


그중에 가장 많이 속해 버리는 유형은 이것 아닐까. 우리 가족은 괜찮을 거야, 나와 친한 사람은 괜찮을 거야 하는 사람. 속해 버린다고 한 것은, 장기화된 코로나 상황에 한두번이라도 안 만날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 간의 책임감이라던가, 정말 한 번이라도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마다 한쪽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코로나가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가려가며 걸리는 거라더냐.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 관련 데이터를 보면 사실 이 말이 맞다. 질병관리청에서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데이터를 믿어라.


기선겸 :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이 가치관이 기선겸을 만들었구나 싶었다. 육상계 폭력사건에서도, 가족들에 대한 기사들이 넘쳐날 때도, 아버지가 서단아와 결혼시키려고 작전을 짜는 중에도 각각의 사람들을 믿기보다는 상황, 즉 맥락을 파악한다. 그리고 이해한 맥락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상대방을 보면서 원래 그런 놈이야, 또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단순히 믿기보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행동하는구나, 그럼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런 생각의 흐름을 가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역시 기선겸은 자신을 당연하게 믿기보다는 제삼자처럼 바라보며 자신이 벌여놓은 상황을 믿는다. 매일 달리는 것, 기록을 재는 것, 일기를 쓰는 것, 정리 정돈하는 것, 밥을 건강식으로 차려먹는 것, 화부터 내지 않는 것, 잘못했을 때 사과하는 것  등. 그 시스템 안의 나를 믿는 것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삶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다 보면,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믿게 되는 이유로 이어진다.


오미주 : 나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기선겸씨가 살아가는 방식. 그때도 그랬잖아요. 차근차근 한 사람씩 이기다 보니까 눈앞에 아무도 없었다고. 바로 눈앞에 놓인 과정들을 천천히 밟아 가는 거. 그렇게 가는구나 싶어서.


오미주가 기선겸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도 이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번역하는 것이 직업인 오미주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맥락이냐에 따라서 같은 말도 뉘앙스나 뜻이 달라진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아는 일. 그런 오미주에게 기선겸은 맥락을 알고 싶은 사람으로서 매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믿음을 주는 기선겸이었기에.






* 사진출처 : 드라마 <런 온> 공식홈

(https://fs.jtbc.joins.com/prog/drama/runon/Img/site/ProgInfo/202012071335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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