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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Jan 06. 2021

남편은 클래식이 좋다고 했어.



연애 때였다.

지금의 남편은 주말에 내가 있는 지방까지 데이트하러 내려오곤 했었다. 토요일마다 풍경이 좋은 여기저기를 다녔고 매번 스케줄을 짜오는 건 남편이었다. 나는 그저 숨쉬기만 하면 되었고 맡은 역할은 아마도 웃고 먹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그건 어렵지 않았다.


대화 중에 음악 이야기가 나왔다. 아, 이건 취향을 묻는 건가? 나는 탱고 음악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피아졸라와 카나로, 도나토, 로무토, 다리엔조, 로드리게스, 디살리의 음악을 모두 다 좋아하지만 얘기는 못했다. 나의 마이너 한 취향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데이트 시간에 늘어놓을까 싶었다. 음악을 이야기하며 그 당시 내가 빠져 있었던 탱고 생활도 조금은 소개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남녀가 정분날 것 같은 포즈로 껴안고 추는 춤이라고는 소개하진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비발디였다. 나도 좋아해서 우리는 사계의 음악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특히 여름의 3악장에 대해 해설가처럼 이야기했다. 남편이 다시 보였다. 그렇게 안 보였는데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다음 주, 어김없이 데이트하러 내려온 남편의 차에 타자 귀에 익숙한 음악이 들렸다. 탱고 음악이었다. 남편을 쳐다보니 빙그레 웃었다. 널 위해 준비했다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도 탱고 음악을 듣는구나. 로망이었던 탱고를 함께 즐기는 사람이 생겼구나 싶어 탱고 뽕이 차올랐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탱고는 탱고인데 뭐랄까, 살짝 다른 향기가 났다. 이 음악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뭔가 익숙했다. 그건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손을 씻고 나오면 마주치곤 하던 트로트CD 판매대의 음색이었다. 다름 아닌 뽕짝의 음색. 전문용어로 트로트였다. 남편이 준비한 CD는 뽕짝 필이 나는 탱고 음악이었다. 반도네온과 피아노 대신에 색소폰과 아코디언이 나왔다. 차올랐던 뽕 대신에 뽕짝필하모닉이 울려퍼졌다. 남편은 도취된 듯 탱고 음악이 참 좋다고 말했다. 특히 라 쿰파르시타가 좋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이분은 행진곡 같은걸 좋아하는구나. 클래식한 탱고를 트로트풍으로 편곡한 탱고 음악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준비한 남편의 성의가 나쁘지 않았다. 클래식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탱고도 들어보려 하는구나.  


그러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뒤, 나는 밀롱가(탱고 추는 곳)에 춤추러 가는 일이 뜸해졌다. 가서 춤을 춰도 이상하게 예전보다 시들했다. 차라리 남편하고 노는 게 그 당시엔 더 재밌었다. 월요일이라 피곤해서 일찍 자려는 나에게 남편이 오늘은 자기가 좀 할 것이 있다며 먼저 자라고 했다. 나는 비록 밀롱가는 못 가지만 침대에서 유튜브로 탱고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유명한 댄서 치쵸와 호라시오의 영상을 보았다. 탱고를 추는 사람과 결혼을 했으면 지금쯤 부엌에서 밤마다 밀롱가를 열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끔 엉거주춤하게 주방 비좁은 곳에서 남편과 한 곡 추긴 했다. 그러나 그 춤은 얼마 안 가 어설픈 바챠타로 이어지고 만다. 그래, 치쵸는 아니지만 같이 음악 듣는 남편이면 됐지 뭐. 지금은 밀롱가도 귀찮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그런데 거실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악이었다. 이 음악을 어디서 들어봤더라? 나는 내 귀에 울리던 그 익숙한 비트를 생각해 내었다. 그건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손을 씻고 나오면 울려 퍼지던 그 뽕짝이었다. 완벽했다. 전문용어로는 트로트. 아니 이게 뭐야. 놀라서 나가보니 거실에선 남편이 소파에 기대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선 다름 아닌 가요무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본다고 생각했던 그 프로였다. 이걸 지금도 한다고? 부모님도 요즘은 가요무대를 안 보고 불후의 명곡을 보시는 것 같던데. 나는 가요무대를 아직도 TV에서 하는 줄 몰랐다. 남편은 도취한 듯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잊어야 할 사랑이라면 돌아서서 울지 마라 눈물을 거둬라. 내일은 내일 또다아아시 새로운 바람이 불거야. 근심을 털어놓고 다 함께 차차차.


델리스파이스나 넬이나 루시드폴 같은 인디음악을 듣던 나에게 가요무대는 미지의 세계였다. 사실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노인분들만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중년이긴 해도 아직 나는 준비가 안되었다. 난 블랙핑크나 선우정아의 노래가 좋단 말이다. 가요무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주현미와 김성환, 설운도와 배일호 님도 있었고 최희준 님도 있었다. 그대와 같이 즐기는 스위트 라이프이면서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는 곳이었다.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내 인생에 굽이굽이 박수를 보내는 곳, 밤거리에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거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가 있는 40년대부터 희망의 새 아침이 밝아오는 날까지 내가 태어난 70년대의 노래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자기야. 자기 가요무대를 봐?"라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흐뭇하게 이걸 보는 게 일주일의 낙이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가요무대를 보는 게 낙이구나. 나는 가요무대를 보는 사람과 결혼했구나.


그날 이후 월요일 밤 10시가 되면 나도 남편이 틀어놓은 가요무대를 흘려듣기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간 가요무대를 못 본 것 같던데 내가 결혼 후 탱고 추러 못 간 이유와 같았을지는 모르겠다. 연애 때 가요무대 애청자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역시 나처럼 데이트 할 때라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안 한 이유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옆에서 가요무대를 듣다 보니 최희준 님의 하숙생 노래가 귀에 들어온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그렇게 월요일의 노곤함을 녹이며 보곤 했던 가요무대도 아이가 태어나니 통 시청을 못하게 되었다. 역시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분명 가긴 가는구나. 가요무대 본지가 몇 년이 되어간다. 밀롱가 못 간지가 수 년이 되어간다. 눈물이 난다. 더구나 올해는 이래저래 더 눈물이 난다. 오늘 밤은 한 곡 땡기던지 가요무대를 틀던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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