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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Jan 17. 2021

달봉이 (2)

네가 오를 봉우리는 캣타워일까?




달이에겐 그렇게 집에서 잘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있었다. 열린 문으로 우리에게 들어온 달이는 그 열린 문으로 종종 다시 나가려고 했다. 이 시도는 꽤 자주 성공하여 사람들이 현관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문으로 잽싸게 나갔다. 그렇게 나간 녀석 뒤로는 달이를 추격하는 남편과 내가 있다. 달이가 처음 집을 나간 날, 남편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가며 문을 연 틈으로 녀석이 튀어나갔고 너무 빨라 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사료통으로 소리를 내며, 츄르로 냄새를 피우며, 남편과 나는 그날 밤 달이를 찾으러 다녔다. 우리 집 바로 위층 현관문 앞에서 에옹 거리는 달이를 찾아 데려왔다. 다행히 녀석은 멀리 안 가고 집에 다시 돌아오려 한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닫을 때 아무리 조심해도 나가려는 이 녀석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남편이 흡연구역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저 멀리서 어디서 많이 본 고양이가 다가와 다리에 부비적 대더란 것이다. 바로 달이었다. 우리는 밤에 달이가 나간 줄 모르던 때도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현관에 방충 문을 달았다. 나갔다 돌아온 달이에겐 욕실에서 꼭 목욕을 시켜주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이렇게 꼬질 해 질 수 있다니 신기했다. 목욕을 한 후 달이는 젖은 털을 핥으며 따뜻한 방바닥에서 늘어지게 잠을 잤다. 그렇게 잠을 잔 뒤는 사우나에서 나온 사람처럼 뽀송해졌고 식탁 위에까지 올라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러덩 누워버리는 것이다. 그 뒤로 우리는 달이를 달봉이라 불렀다. 이미 어떤 봉우리에 도달한 녀석처럼 느껴졌다.


달봉이가 달아나긴 해도 금방 우리가 데려오니 그렇게 해결 못할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왜 저렇게 나가려고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집에서는 캣타워에서도 이불 속에서도, 고양이들과도 사람과도 잘 지냈다. 그 이후 마지막으로 최장기 탈출 사건이 있었다. 탈출이라 이야기하니 우리 집이 감옥 같았나 싶기도 하다. 감옥은 아니었어도 비좁은 그 시영아파트의 낡은 21평에는 이미 인간도 고양이도 그 많은 짐들도 모두 포화상태였다. 그 당시 직장에 다니던 나는 시터분께 아이의 등하원을 맡겼다. 유모차를 밖에 둔다고 해도 아이와 외출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처럼 쉽지 않다. 퇴근하고 와보니 시터님이 아이를 등원시키러 집 밖을 나서는 그 틈에 달봉이가 나갔다는 것이다. 시터 분도 아이와 함께라 붙잡으러 따라가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해하는 시터분을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라도 어쩔 수 없었을 테니까. 여러 번 집 나가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이라 이제는 새롭지도 않았다. 다만 겨울인데, 집에서만 있던 집고양이가 추운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달봉이를 찾으러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거의 한 달이 다 돼 갈 무렵, 조금 일찍 퇴근 한 날이었다. 그날은 겨울치곤 햇빛도 따뜻했고 낮엔 포근했다. 매일 가던 길목에서 조금 다른 걸음으로 아파트 사이를 걸었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저 앞 오솔길 한가운데 어떤 고양이가 드러누워 있는 게 보였다. 햇살을 쬐는 듯했다. 짧은 다리를 가진, 코 옆에 커피 자국 같은 얼룩이 있는 고양이. 달봉이였다. 자칫 덤벼들다간 놀라 달아나면 안 되니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달봉이를 지켜보고 있자니, 어쩐지 달봉이는 집에서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낯설었다. 집에서 보던 달봉이가 아니었다. 한 달째 바깥 생활을 하고 있어서인지 털이 얼룩덜룩한 회색이 되었고 나이도 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자유로운 느낌이 났다. 녀석이 드러누운 그곳은 햇살이 바람에 일렁이는 조용한 곳이었다. 바깥 생활이 나쁘지 않았던 걸까? 인도어(indoor) 고양이 사료만 먹던 달봉이는 더 이상 indoor가 아닌 outdoor에서 겨울의 그 짧은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길고양이의 낭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달봉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려는 나의 시도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달봉이에겐 달봉이 나름대로의 자유가 필요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나가려고 했을까? 비좁은 집보다 정글 같은 길 위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아이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달봉이는 그르릉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나는 그날 시끄러운 아이들이 오지 않았더라도 달봉이를 데리고 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인 좁고 낡은 집구석을 자조하며 돌아봤다. 시터를 고용한 것도 직장생활을 계속하고자 함이었다. 내가 집에 있었어도 나갈 고양이는 나갔을 테지만 나는 왜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나는 왜 아이도 내손으로 등하원 못 시키며 남의 손에 맡겨 일을 이렇게 그르치는지, 왜 나는 내 고양이들한테 쾌적한 공간도 못 주는 곳에  살고 있으면서 고양이 욕심을 내었던 것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곱씹었다. 나의 낡고 오래된 아파트는 집집마다 아이들 소리와 저녁 준비로 밥솥에 추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 월드컵경기장의 행사 진행 스피커 소리로 웅웅거렸다. 달봉이를 데려오지 못한 체 집으로 가는 내 마음도 함께 웅웅거렸다.


다음 날부터는 달봉이를 더 찾지 않았다. 나는 길 위에 누워 망중한을 보내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어디에서라도 달봉이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집을 나가려 한 고양이니 어디서든 잘 살겠지 싶었다. 이젠 밤에 내 품을 찾아와 꾹꾹이를 하고 말랑한 겨드랑이를 내주며 그르렁 소리를 들려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 보들보들한 털에 얼굴을 묻고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나 없이도 잘 있는 것 같은 달봉이가 야속했지만 이젠 잊으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고 며칠 뒤, 집 앞 아파트 잔디에서 아이와 나는 남은 눈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더러워진 눈덩이들 사이에서 갑자기 아이가 외쳤다. 달봉이가 저기 있다고. 나는 아이가 말한 곳을 보았다. 여기저기 덩어리 진 털 뭉치에 얼굴은 꼬질 하지만 코 옆에 커피 얼룩이 묻은 다리가 짧은 고양이, 달봉이였다. 달봉이는 나를 향해 울음소리를 냈다. 오랜만에 듣는 달봉이의 소리였다. 수풀 사이에서 빠져 나오는 달봉이는 나에게 오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달봉이를 집으로 데려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러워진 고양이를 안았다. 그새 몸이 가벼웠다. 바깥 생활이 만만치 않았나 보다.


집에 온 달봉이는 그 이후론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몇 달 후 우린 시골의 조금은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덕분에 고양이들의 공간도 어느 정도 넉넉해졌다. 달봉이는 여기 와서 어쩌다 문 틈으로 나가게 되어도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 나가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걸까? 아니면 이젠 적응하고 체념한 걸까? 만약 달봉이가 다시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손끝으로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달봉이는 나를 매우 귀찮게 한다. 글쓰는 시간의 리츄얼이라고나 할까? 일단 고양이를 치워야 한다. 그리고 고양이를 또 치워야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너는 집안 여기저기 너를 묻히고 다니고 나에게도 그렇다. 그때 너를 안아들고 다시 집으로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너에게 자유를 줬다면? 아마도 그리워 하기만 했겠지. 지금은 옆에 두고 너를 그리기도 하고 너에 대해 써보기도 한다. 네 옆에서 너의 발바닥을 만지고 숨결을 느낀다. 나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리워하지 않고 이렇게 눈 앞에서 너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내 주머니의 돈으로 너의 먹을 것을 사고, 너의 마음과 꾹꾹이도 산다. 그러니 너는 내 옆에 있기만 하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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