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1일 출근날, 휴일 당직근무를 할 때 그 울적한 마음을 소비에 대한 상상으로 달래는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업무를 처리한 뒤 생각난 것은 20만 원 대의 마샬 블루투스 스피커였다. 물론 상상으로 끝났다. 모두 현실로 실현했다면 버스비도 없어서 출근을 못했을 것이다.
소비에 대해 상상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사실 신년을 맞아 갖고 싶은 건 고급 스피커보다, 즐길만한 취미였다. 그렇게 대구에 온 지 8년 만에 대구 시내에 독립영화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립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일상의 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여러 장면에서 시계초침 소리까지 귀가 집중된다. 영화는 고요하다.
사랑에 관한 영화이지만, 주인공들은 대화는 아주 적다. 결국 영화 상영 30분이 지나고서도 서로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1시간이 지나도록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또한 부자연스러울 만큼 짧다. 하지만 이러한 고요함 속에서도 둘의 마음은 선명하게 드러나며, 짧은 대화들은 착실하게 유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일상의 소리들이 ASMR처럼 청각을 자극한다.
물론 이러한 연출의 힘이 점점 빠지고, 심심해지기도 한다. 연인의 침묵과 단절에 지치고, 둘의 감정을 대신 말하는 노래들이 지루해진다. 그때 이목을 끌었던 건 여주인공이 키우게 되는 유기견이다. 이 유기견은 미궁에 빠진 관계에서 길을 암시한다. 그렇게 셋은 생존을 위한 일상에서 낙엽처럼 바싹 말라버렸지만, 낙엽은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을 싣는다.
지난달에 바스락바스락 낙엽소리를 내며 걸어와 무릎에 올라오던 길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6년 동안은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를 6년 동안 돈을 모으자, 결국 키울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새해 첫 당직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아침, 우리 집에서는 우리 집 고양이가 무릎으로 올라왔다.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잠깐동안은 음악처럼 들렸다. 스피커를 사는 건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