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영화 파일럿이 개봉 나흘 만에 100만을 돌파했다. 한 달 먼저 개봉한 핸섬가이즈와 비교하면 3배나 빠른 속도이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중년에 들어서는 남성의 좌절을 그린다는 점이다. 얼마 남지 않고 도래할 미래에 씁쓸함이 든다.
핸섬가이즈의 두 남자는 서로에게 마초남과 샤프남이라, 집도 있고 꿀리는 건 없다 한다. 하지만 집에서는 제3의 존재가 나오는 실정이다. 둘이서 자족이라도 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했지만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니 원.
파일럿에서는 항공기 조종사로, 가장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지만 좌절하는 중년 남성이 나온다. 아예 성별을 바꿔 극복하려고도 한다. 중년에 따라다니는 듯한 이 저주 같은 것들을 그들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영화에서 중년의 위기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브런치에서는 중년의 퇴사, 질병, 이혼을 극복하는 이야기들이 높은 순위들을 차지한다.
서점가 또한 중년을 겨냥하는 책들이 여럿 볼 수 있다. 마흔에 읽는 니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흔에 읽는 카네기까지.
마흔은 체력과 건강은 예전 같지 않은 반면, 밖으로는 직장의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고 안으로는 자녀와 부모 두 세대의 돌봐야 하며, 믿어왔던 삶의 방식에 균열이 생기는 나이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위기를 두 영화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물론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핸섬가이즈와 파일럿 모두 슈퍼히어로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핸섬가이즈에서 악마와 맞짱을 뜨고 세상을 구하며, 파일럿에서 비행기 비상착륙을 성공시켜 승객들을 구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꼭 필요했던 조력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조력자들은 두 영화의 중년이 먼저 구해준 청년들이다. 핸섬가이즈는 물에 빠진 대학생(미나)을 구해주고, 파일럿은 회식자리에서 신입(슬기)을 구해준다. 그 결과로 핸섬가이즈에서는 악마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는 건 미나이고, 파일럿에서 시험받는 정체성을 회복하게 한 건 슬기이다.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에게 도와주었던 것이 마흔의 위기에서 구원투수로 돌아온 것일까.
직장에서 '저건 아닌데' 하는 경우가 있다. 신입에게 불필요하게 군기를 잡거나, 업무를 더 힘들게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 내 코가 석자인데, 나설 필요가 있을까 하며, 직급이 있는 사람과의 사이가 불편해질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파일럿에서는 초반 이런 식으로 동조했던 한정우가, 영화말미 동조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성장을 보여준다.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서 아무 편도 들지 않는 것은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후배의 편을 들어줬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상사의 말에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으면 좋을 순간들이 있었다. 감성적인 마음 때문이 아니다.
다른 팀의 그 상사는 떠났지만 같은 팀의 후배와는 함께 일하고 있다. 후배에게 그 일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나 또한 후배에게 좋지 않은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상사의 말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그것을 변화시켰다면 어땠을까.
마흔의 위기에서 극복하려면 불합리한 상황을 거스르고 스스로를 관철할 힘이 필요해 보인다. 부드러운 태도로 인내하는 힘과 쌓아왔던 것을 걸고서 완고하게 바로잡는 힘같은 것이.
다만, 현실은 후배가 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선배가 지나치는 것을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