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하이파이브에서의 몸

by 전자렌지

오래전 엄마는 나중에 자신이 죽으면 어느 병원에 카데바로 기증을 해달라고 했었다. 의대생들의 해부학 실습을 위해 사용되는 시신, 카데바. 그때 모르는 사람들이 엄마의 알몸을 해부하는 께름칙한 상상을 했다.



수술실의 의사들은 기증자 앞에서 일상인 듯 가벼운 대화를 하고, 장기를 적출하기 전 일상적으로 예를 갖춘다. 죽은 자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을 얻은 이의 일상으로 영화 하이파이브의 시작한다.



태권도를 좋아했던 여중생은 심장을 기증받아 힘껏 뛸 수 있게 되고, 폐의 문제로 숨쉬기도 곤란했을 청년이 5미터 뒤에서도 리코더를 불 수 있게 되고, 불빛을 볼 수 없던 이가 그것을 조종할 수 있게 됐을 때, 초능력으로 유머스럽게 은유되는 건 되찾은 일상이다.



어떤 이야기들은 과장되면 과장됐을수록 더 응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영화는 초능력이라는 소재로 그 편에 선 듯하다. 장기기증을 받은 사람들의 일상, 그 차례를 대기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상상들을 포함한다. 하이파이브는 주인공들이 초능력이 발현되었을 때의 기대감에서 나아가 신체의 결핍이 충족으로 바뀌는 1인칭의 순간에 빠져들게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소녀가 운동화를 질끈 묶고 멀찍이 보이는 오르막을 향해 몇 번이고 오르는 장면들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 단순한 행위이지만 오랜 시간의 결핍이 충족으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몸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다.



이는 새신교 노동현장에서의 몸에 대한 태도와 대비를 이룬다. 안전난간 설치를 몇 번이나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아 사고가 나고, 많은 노동량으로 인해 혼자 남아 일을 하다 변을 당한다. 그렇게 몸은 어떨 때 몸뚱이, 육신, 껍데기로 격하되고, 그래서 마치 영화 속 누가 그랬던 것처럼 포기할 만한 것이 되기도 한다.



불편한 감정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장기를 기증받은 뒤에도 온전한 아니 초능력의 몸을 가져도 외로움, 열등감이 따라온다. 헐크만 한 힘을 가진 태권소녀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고, 숨 한방으로 사람을 날려버리는 지성은 열등감으로 인해 다른 초능력자인 기동에게 시비를 건다. 기동또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찌감찌 독화살 같은 말을 날리는 사람이고, 그들을 아우르는 선녀 또한 큰 상처를 갖고 있다.



그들 각자의 콤플렉스를 극복해 나가는 건 짧은 에피소드들처럼 연결되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다. 혼자 병상에 누워 고통과 외로움이라는 결핍을 갖고 있었을 그들이 힘을 합치는 장면은 재밌고 인상적이다. 요구르트 차를 타고 추격자들을 따돌리는 장면이나, 공장에 갇힌 구할 때 한 사람의 초능력으로 쉽사리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낱말퍼즐을 하나씩 맞추듯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반면 최종빌런과 맞서는 후반부가 상투적이라고 느낄 정도이다. 초능력자들이 치고받는 장면이 이어지고, 그 또한 빠르게 치유되는 장면에서의 다시금 육체는 마치 로봇의 그것처럼 격하되어 있는 듯하다. 주인공들은 노동자들의 안전장치에 몇 번이나 언급하다가도, 정작 자신들은 예외이다.



영화 후반부 빌런과의 결투에서 초능력자들의 몸은 히어로는 그래야 한다는 듯 상투적인 답습을 한다. 영화초반 장기기증자로서 목숨을 끊은 원조 초능력자의 행태를 따라가는 듯 말이다. 그저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씁쓸한 위안 삼아야 하는 걸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인노래방 있는 코세권으로 온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