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1 <낙타 - 정도상>
만남과 헤어짐, 그 어딘가의 여행길만남과 헤어짐, 그 어딘가의 여행길
소중한 친구로부터 도착한 책 한 권.
입원생활을 반년 넘게 하고 있는 나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손편지와 함께 도착한,
내 영혼의 여행길을 이끌어 줄 책 한 권, 정도상 작가의 낙타.
이후 책을 선물한 친구는 책이 슬픈 내용이라는 말에 행여나 책을 잘못 보내준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걱정과는 달리, 난 덤덤하게 낙타와의 만남을 마주하고 동시에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자는 몽골 테베시에 있는 암각화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일행과 함께 지프를 타고 이동하던 중 지프가 고장 나고, 고장 난 지프를 수리하던 일행을 두고 잠시 노을에 빠져들던 중 길을 헤매게 된 화자.
그런 화자가 마주한 건, 짧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들, 규(奎)였다.
지상에 있으면 안 되어야 하는 존재와 마주한 화자.
그리움에 사무쳤을 그 존재와 함께 '만남'을 갖고 테베시의 암각화를 찾기 위한 몽골여행을 시작한다.
화자는 몽골 여행 중 많은 것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여기저기 유목민 게르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내며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유목민으로부터 낙타 두 마리 구매하고 이 낙타에게 불량과 소심이란 이름을 붙여주며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
물론 이 낙타 두 마리는 밤 중에 묘연히 사라지며 급작스런 헤어짐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름을 주었다'는 관계에서 오는 힘이었을까?
그들은 테베시로 가기 위해 고비사막에 몸을 맡기던 찰나 다시금 만남을 반복한다.
마주치는 많은 것 중 조르흐와 체첵이라는 부녀지간과는 좀 더 특별한 만남을 쌓는다.
한국에서 일을 한 이력이 있는 조르흐. 그래서인지 유창한 한국말로 이 부자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의 딸 체첵. 엄마가 한국에 있다며, 자신이 엄마를 데려올 터이니, 그때까지 엄마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주술사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체첵.
홉스골에 있는 주술사를 만나보고 싶다는 체첵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테베시를 향한 여정을 잠시 미루고, 함께 주술사를 찾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그 여정 사이, 체첵과 규 사이에는 알듯 말 듯 순수함 가득한 애틋한 만남이 피어오른다.
화자는 옆에서 넌지시 조언과 장난 그 사이를 던져가며 즐겁게 이들의 만남을 지켜본다.
정확한 소재를 파악할 수 없던 주술사.
그 신비한 존재를 찾기 위해 여행길 중 마주하는 유목민들에게 그와 관련된 소문을 묻고 또 묻는다.
소문을 묻던 중 원치 않는 소식을 듣게 된다. 주술사가 흙으로 돌아갔다는 것.
하지만 화자와 규는 체첵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체첵이 자신의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그들은 홉스골을 지나 고비사막을 향해 가던 중,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주술사를 마주하게 된다.
주술사와의 만남과 헤어짐 뒤,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조르흐와 체첵과의 헤어짐을 마주한다.
고비사막을 따라 테베시에 도착,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또 다른 체첵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의 만남을 갖는다.
소녀가 속해있는 무리의 아이들과 부자의 최종 목적지, 암각화를 찾아낸다.
암각화와의 만남을 끝으로 화자는 규와의 헤어짐을 맞이한다.
규는 암각화 속 낙타를 타고 별이 되기 위한 여행길에 오르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다.
몽골 여행에서 마주하는 유목민, 조르흐와 체첵, 주술사, 암각화, 그리고 세상과 영원한 헤어짐을 가졌던 규까지.
그들과 보낸 시간 중 발생한 에피소드는 모두 다를지언정, 결국 만남이 있었고 그 끝엔 헤어짐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몽골 여행 사이사이 화자는 독자에게 한국에서의 회상을 보여주곤 한다.
아들 규와의 영원한 헤어짐을 마주하게 된 장면, 젊은 시절 서울에서 만났던 숙자와의 회상 등.
이 장면 역시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고 있음엔 여타 다를 바 없었다.
이 작품과의 만남을 지속하다 보면 화자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내비쳐주는 구절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마주하는 문장은 작품 속 여타 문장들과는 다르다는 이질감을 주기 때문에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화자, 아니 작가는 독자에게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자신은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연극의 독백과 과도 같다는 느낌을 느꼈다.
어쩌면 작가는 과거의 만남에만 얽매여있는 내면의 영혼에게, 이제 그만 과거로부터 벗어나 오늘을 살자는 강한 의지를 지면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책장이 마냥 가벼운 작품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묵직하다.
낙타와의 여행길을 덤덤하고 또 평온하게 지나온 것을 보면, 나 역시도 생각보다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사람임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마냥 밝지 않은 이 여행길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면 속에 깊은 곳 어딘가에 어둠이 짙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애써 무시하며 살아온 그 어둠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둠에 잠식당하는 것이 아닌, 만남과 동시에 자연스레 헤어짐을 준비할 수 있는 그런 여행길에 오른 것 같았다.
'밍님은 참 밝은 사람인 거 같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기운을 주는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어쩌면,
눈앞에 닥친 현실의 어두움을 애써 무시하고, 과거에만 얽매여 현실 속 과거를 살아가는 그런 모순에 갇혀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낙타 속 화자/작가가 지면을 통해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던 '지금, 오늘, 현재'를 살아내기 위한 강한 의지인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