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밍한 밍 May 27. 2024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삶>

한 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시험 이후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시간의 나날을

하품의 연속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귀를 쫑긋 세울만한

두 개의 단어가 들려옵니다.


낙원상가, 클래식기타.


두 개의 단어에

엄마카드라는 필살기가 더해지며,

한 명의 학생에게 새로운 악기가 생깁니다.

초등학생 때, 관뒀던 피아노 이후로

약 9년 만에 흥미를 갖게 된 악기입니다.


클래식기타는

학생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혼자 똥땅거리 자니 너무 속도가 더디고,

이게 잘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나는 학생. 그는 이 의구심을 당당함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실천합니다.


꽂혔을 때의 행동력은 기가 막힙니다.


악기에 대한 지식과 실력이 많이 좋아졌군요.

방학이면 방에서 혼자 연주회 준비를 하고,

곡을 감상하고 분석하기 바쁩니다.


학생에게 클래식기타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어 보이는군요.

무엇보다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상병장 월급 반년을 꼬박 모아

자신의 기타를 새로 장만하기에 이르렀으니까요.


졸업 학기에 올라간 동아리 연주회에서는

30여 년이 넘는 동아리 역사 중 최초로

색다른 악기 조합을 구성하는군요.

같이 무대를 준비하는 후배들이

윗선배들에게 혼나면 어떡하냔 걱정에,

총대는 자신이 멜 터이니 무대에만 집중해 달라 하네요. 다행히 그 무대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더불어

그 연주회에서 독주 무대를 꾸린 그 학생.

한 관람객으로부터 연주를 한번 더 듣고 싶다고,

더 이상 동아리 무대에서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는

감상을 듣습니다.


호오~ 아주 얼굴이 환해지는군요.


덩달아 운이 좋게

바이올린, 첼로, 잼베, 피아노, 기타로 이루어진 앙상블에

합류하게 됩니다.

약 2여 년의 시간 동안,

동아리 활동 내내 시도해보지 못한,

코드로 반주를 넣는 법을 스스로 학습했고

꽤 그럴싸하게 흉내도 낼 수 있게 됐네요.


더불어 사회생활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웁니다.

클래식기타로부터 나오는 조화로운 선율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조화, 갈등 등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됐네요.


원하는 음색을 갖추기 위해 갈고닦는 시간과,

여러 사람과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부딪히며 깨지는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지합니다.


클래식기타를 치기 위해 손톱을 직접 다듬던 그 학생은,

손톱뿐만 아니라 마음 역시 다듬어야 함을 드디어..

깨우치게 되는군요.


지금은 한쪽 귀퉁이에 닳아빠진 케이스에 잠들어 있는

추억보따리를 바라보며,

그 학생은 이따금 기타를 칠 것이라 다짐합니다.

다짐만 합니다.


과거를 현재로 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때임을

알게 됐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추억 회상하기가 아닌,

추억 만들기를 위한 새로운 무언가가

학생에겐 필요한가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려라, 차원의 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