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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한 밍 Apr 26. 2023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

밍의 책장 #3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 병상에서 마주하는 두 번째 어린 왕자


  2022년 10월 입원 한 지 만 3개월을 채워가고 있을 무렵, 다시 책을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읽는 책은 어떤 것으로 시작할까?'

이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생 책으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에게 꼭 소개하는 <어린 왕자>.


  <어린 왕자>와의 첫 만남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초등학생 무렵이었는지 혹은 중학생 무렵이었는지 그 시기도 어렴풋하게 남아있지 않다.

과거의 어느 날, 난 그 책을 단순히 '읽었고' 그냥 재밌었다.

그뿐이었다.

  수능을 마친 그 해 12월, 가채점 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2-2 수시 준비를 하고 마무리되어 갈 때쯤 갑자기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만난 두 번째 <어린 왕자>는 나에게 '그냥 재밌었다'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묵직한 진지함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매 년 <어린 왕자>를 읽기 시작했다.


19년 12월 <어린 왕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시작됐고, 그는 23년 3월 내 곁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번 <어린 왕자>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그동안 <어린 왕자>를 읽고 느낀 소감을 적었던 때와는 다른 기분에 휩싸였다.

화면의 빈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 막연함과 막막함, 공허함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이번 어린 왕자에서 느낀 건 뭐였지?'
'분명 읽을 적엔 이 포인트를 기준으로 써야겠다던 게 있었는데 그게 뭐였지?'
'어딘가 텅 빈 느낌인데... 이번엔 글을 남길 수 있을까?'

심지어 이런 걱정마저 사뭇 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적어보기로 맘을 다잡는다.

23년 3월, 여느 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 <어린 왕자>


○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던 어린 왕자.
자신의 별을 떠나온 그가 밤하늘을 볼 때마다 아늑해지는 이유는 그가 사랑하는 꽃 덕분이었다.
그가 꽃을 사랑할 수 있던 까닭은 그와 꽃이 함께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덕분이다.


  지구에서 만난 여우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작용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덕분에 여우는 그가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질 수 있었고,
바람에 나부끼는 황금 밀밭을 보며 어린 왕자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화자와 함께 마셨던 노래를 부르던 우물 속 물.
물 역시 도르래와 밧줄, 화자와 함께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덕분에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화자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선물을 주는 어린 왕자.
화자가 보는 밤하늘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를 것이라는 어린 왕자.
밤하늘 속 수많은 별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자신을 생각하면 모든 별들이 웃고 있을 것이라던 어린 왕자.
화자와 어린 왕자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덕분에 이러한 조금 특별한 선물을 줄 수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린 왕자가 웃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밤하늘의 모든 별은 나를 향해 웃고 있다.




○ 십수 년을 함께한 그를 떠나보내며


  화자는 뱀과 대화하는 어린 왕자를 보며 말한다.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겠다."

하지만 끝내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도움을 구했고, 어린 왕자는 화자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화자에게 밤하늘 속 수많은 별을 선물로 주었다.
십수 년을 함께 나와 함께 지내온 어린 왕자로 이렇게 사라져 버렸다.


  어린 왕자와 함께 했던 십수 년 동안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아갔다.
상자 속 양이 곤히 자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미소를 지어 보이던 날도 있었고,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한 송이의 꽃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날도 있었다.
그가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이상한 어른들을 회상하기도 하고, 열차 속 차창을 보는 아이들이 찾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루는 수평선 너머 떨어지는 해넘이를 함께 바라보며 마흔네 번 해넘이를 바라봤던 날의 기분을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어린 왕자가 나를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작품 속 그 모습처럼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자 그로 인한 허무맹랑함만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가득 메꿀 뿐이었다.
그 빈자리를 보며 이젠 그를 추억할 뿐이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젠 비어있는 그 자리를 정리한다.
어린 왕자가 B612의 사화산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처럼.
그는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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