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4 <파친코 - 이민진>
1910년 ~ 1945년은 대한민국 역사의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하면 으레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민족', '독립운동', '임시정부', '투사' 등 모두 '광복'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한 투쟁심 넘치는 색채를 띄고 있다. 그만큼 강렬하고,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민족 혼에 불 지피기 충분하다.
그리고 역사에, 교과서에 독립투사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그들의 활약상을 후손들에게, 전 세계에 꾸준히 알려주고 있다.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광복 이후 자식 세대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기는 하나, 위에서 언급한 강렬한 색채의 단어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작품이다. <파친코>는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다.
<파친코>는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영도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노부부에겐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는 입술이 갈라지고, 한쪽 발을 절뚝이는 '훈이'.
노부부는 중매쟁이를 통해 '양진'이라는 여성과 아들을 혼인시킨다.
훈이와 양진사이엔 '선자'라는 딸이 있다. 세 가족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 지 어연 13년. 훈이는 결핵으로 세상을 뜬다.
장례를 치른 후, 양진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양진은 자신과 자신의 딸을 먹여 살려야만 했다. 선자 역시 엄마 양진을 따라 묵묵히 하숙 일을 도운다.
일제가 강제로 조선의 통치권을 빼앗아간다 한들, 이들에겐 통치권을 빼앗아간 것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의 '나'와 '내 가족'의 생계다.
하숙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장을 오가며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이 일으킨 중일 전쟁에 대한 소식을 듣지만, 그들의 생계와는 무관한 사안이다.
단지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생계비용에 어려움이 가중될 뿐.
전쟁이 끝나 그들의 생계가 좀 더 숨통 트이길 바랄 뿐.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밥을 짓고, 방을 청소하고, 시장에 나가 장을 본다.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았고,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어느 날 '고한수'가 나타나며 선자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한수와 사랑을 싹 틔우며 아이를 갖는다.
그제야 일본에 가정이 있음을 고백하는 한수.
하지만 선자와 그의 자식에게는 최선을 다하겠노라, 선자와 자식에겐 진심이라 하나, 선자는 그에게 사라지라며, 다신 보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그녀의 하숙집에 평양에서 온 목사, '백이삭'이라는 사람이 들어오며 선자에게 또 한차례 삶의 변화가 생긴다.
백이삭은 선자의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자신의 성씨를 주겠노라 다짐하며 선자와 혼인한다.
그 후 자신의 형 '백요셉'과 그의 아내 '경희'가 있는 일본으로 선자와 함께 떠난다.
그들의 삶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향을 '자발적'으로 떠났다. 그들의 '생계'를 위해.
일본에 도착해 형 부부와 함께 살림을 차리게 된 이삭과 선자 부부.
곧이어 아들이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노아'.
그리고 이삭과 선자 사이의 아이도 태어난다. 둘째 아들 '모자수'.
노아의 출생에 대해선 꼭꼭 숨겨두기로 한다.
일본인 밑에서 일하는 요셉과 한국장로교회 목사로 일하는 이삭.
경희와 선자도 살림에 보태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손수 담근 김치를 길거리에서 팔다 '김창수'라는 사람의 눈에 띈다.
이후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반찬을 만든다.
일본의 종교탄압으로 인해 이삭은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며 그들은 시골 농장으로 거처를 옮겨간다.
시골 농장에서 선자는 엄마 양진과 재회한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고한수. 선자와 엄마가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고한수가 힘쓴 덕이었다.
알고 보니 김창수는 고한수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김창수가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었다.
그 뒷배경에도 고한수가 있던 것이었다.
그는 선자와 노아가 그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뒤에서 힘쓰고 있었다.
또한 노아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노아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지원해 주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의 조선은 혼란 그 자체였다.
북은 소련과 중국이, 남은 미국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내부에선 이념 대립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던 때였다.
고향에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으나, 그들은 눈앞의 생계를 위해 결국 일본에 남아 생계를 이어갔다.
일본이라는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았고, 그들의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요셉이 세상을 떠난 후, 노아는 와세다대학교에 진학했고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을 시작했다.
노아는 대학교에서 만난 인연으로부터 듣게 된 자신의 출생의 비밀로 인해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친아버지가 고한수이고, 그가 야쿠자라는 사실을.
출생의 비밀은 가족 누구도 노아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은 내용이었다.
이 사실을 안 노아는 자신의 과거를 지워버리는 방향을 택한다
와세다대학교를 그만둔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생계를 꾸려간다.
그는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름을 바꾼다.
그 누구도 노아가 노아임을 모르는 곳에서 삶을 만들어간다.
자취를 감추며 살아가던 노아에게 어느 날 엄마 선자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결국 자신은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지해서일까.
그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모자수 역시 자신만의 생계를 꾸리며 살아간다.
파친코에서 일을 하며, 결혼을 하고 아들 솔로몬을 낳아 가족을 꾸린다.
그는 아들이 파친코가 아닌 다른 일을 하길 바라며 물심양면 아들의 교육에 힘을 쏟는다.
그 결과 일본의 한 투자은행에 취업을 하게 된 솔로몬.
하지만 부동산 사업에 이용만 당한 채 결국 해고된다.
솔로몬도 결국 일본인들의 입장에선 외국인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그의 핏줄은 조선인이었다.
일하던 투자은행에서 해고당한 후,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파친코에서 일을 시작한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일본에 정착, 2대 3대를 거쳐 살고 있음에도 그들은 결국 외국인이었고,
그들만의 '생계'를 찾아야 했다.
조부모 - 부모 - 자녀, 3대에 걸쳐 내려오는 대가족의 서사극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 어딘가 불편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일제강점기서부터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엔 항상 차별 어린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해져야만 했다.
역사는 그들의 존재를 잊었을지언정 그들은 눈앞의 생계를 위해 꿋꿋하게 살아남아야 했다.
'조선'과 '일본'에 대한 시선이 세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점도 인상 깊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선자와 이삭, 요셉, 경희에게 조선은 늘 그리운 고향이다.
그들의 부모님이 계시던 곳이었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생계를 꾸려나가며 그들의 삶 일부가 기록되어 있는 공간이다.
반면, 그들에게 일본은 필사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전쟁터였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허드렛일 외에 써주는 일이 변변치 않았다. 운 좋게 관리직을 맡는다 하더라고 일본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으며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반면 일본에서 나고 자란 노아, 모자수, 솔로몬 등은 각각의 인물마다 조선과 일본에 대한 시선이 다양하게 내비쳐진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노아는 선생님들에게 훌륭한 조선인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또한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으며 일본을 좋아했다.
반면 그에게 조선은 그저 '모국'일뿐이다. 심지어 자신과 얽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을 땐, 그의 과거를 지워버리기 위해 자취를 감춘 채 생을 이어나가는 선택을 한다.
그러다 과거를 다시 마주하게 됐을 때, 그의 과거를 스스로 지워버리고야 만다.
모자수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조선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파친코에서 일을 배우고, 사업을 시작하며 차곡차곡 부를 쌓아간다.
그가 악착같이 부에 매달린 이유는 무시당하기 않기 위해서였다.
부를 쌓으면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에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충분한 부를 쌓았음에도 그는 결국 조선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끼며 계속 사업을 확장시켜 나아간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으로까지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이다.
유학 후 자신의 고향인 일본으로 돌아와 직장을 잡고 생계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 그도 결국 조선인일 뿐이었다.
투자은행의 큰 부동산 거래에 참여하게 된 그는 철저하게 이용만 당한 채 버려진다.
결국 그는 그의 핏줄이자 과거인 조선인으로서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파친코의 길을 선택한다.
잔인하리만치 씁쓸한 이야기의 뒷맛엔 늘 찝찝함이 따라온다.
책장은 가벼이 넘어가지만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찝찝함은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온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 <파친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파친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