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의 책장 #5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100번째 생일을 앞둔 노인 알란 칼손.
따분한 일상이 지속되는 양로원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고 곧장 행동으로 옮긴다.
그의 방 밖은 100번째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럼 그는 어디로 도망쳐야 했을까?
바로 창문.
창문을 가볍게(?) 폴짝 뛰어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곧장 발길 닿는 곳으로 행선지를 옮긴다.
양로원 인근 버스 터미널에 도착, 자신이 소지한 돈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같이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첫 번째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과정에서 얻게 된 큰돈을 가진 채.
그 돈은 범죄단체와 연루가 되어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 번째 인연도 지역에선 유명한 도둑이었다고...
혼자 시작했던 즉흥적인 정처없는 여행길의 인연들은 갈수록 점차 늘어만 간다.
동네 좀도둑, 핫도그 노점상, '예쁜 언니', 형사 그리고 코끼리... 까지.
여행길도 순탄치 만은 않다.
본의 아니게 사람을 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그 흔적을 지우기까지 한다.
추리소설에서나 볼법만 기상천외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결코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마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에서 쓱 스쳐 지나가는 잔인한 장면을 보는 느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듯.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멀리서 보듯하는 인상을 비춘다. 그 덕일까? 비극으로 비칠 수 있는 일도 마치 희극처럼 비치는 신기한 현상을 간접경험하는 기분이 들더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전개는 크게 두 가지의 시간 순서에 따라 전개된다.
1. 100세 생일 이후로 이어지는 시간 순서 (2005년, 알란 칼손 100세 여행)
2. 알란 칼손의 지난 100세 동안 일어난 시간 순서 (1905 ~ 2005년, 알란 칼손 연대기)
매 챕터마다 어떠한 시간대의 삶을 서술하는지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어, 헷갈리는 일 없이 편하게 내용을 즐길 수 있다.
세계 대전과 냉전시대에 맞게 등장인물 역시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루스벨트, 오펜하이머, 장제스, 쑹메이링, 마오쩌둥, 스탈린, 김일성, 김정일 등등..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며 능청스럽게 상황을 풀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박장대소까진 아닐지언정, 픽하는 웃음이 새어 나오곤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봤을 땐 머릿 속이 물음표로 채워지기도 했다.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매번 긍정적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건 아니다.
과거엔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고, 거세를 당하고, 굴라그에 수용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 그이지만, 이상하게 작품 내에서 슬프거나 안타깝다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여러 사건사고를 겪어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여겨지는 그의 능청스러움에 나까지 되려 아무 일 아닌 것 마냥 자연스레 쓱 보게 된다.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1905년부터 시작된 과거의 사건은 흘러흘러 결국 2005년에 이르러 마무리된다. 그와 동시에 작품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보여준다.
(마지막 챕터를 읽으며) 어? 이거 어디서 본 내용인데?
책의 두께는 생각보다 두꺼웠다.
지레 겁을 먹고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으나, 그 겁은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 마주하는 내용들은 식겁할 만한 것들이 있음에 분명했으나, 그와 달리 책장의 넘김은 부드럽고 또 가벼웠다.
황당한 사건들 속, 낙관적인 그의 모습. 그와 함께 피어오르는 알란 칼손의 낭만 가득한 이야기.
100세 노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안에서 보여주는 나 자신만의 즐거움과 행복.
책장을 모두 덮은 후, 현실의 나 자신을 위한 행복을 찾아보고자 한다.
나는 언제 행복하고 즐거운지, 작은 행동 하나하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