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안녕하셨나요.
전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마주한 길랑바레증후군이라는 병. 그 병으로 인해 멀쩡했던 두 다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말초신경을 녹이는 이 자가면역질환은 나의 허벅지와 발가락에서 출발하여, 종아리와 허리로 점점 그 반경을 넓혀갔습니다. 하룻밤 사이, 한쪽 발목을 쓸 수 없었고, 또 하루가 지나 양 발가락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다리는 이미 지탱의 역할이 아닌, 그저 애물단지에 불과한 장식품이었고, 오로지 팔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응급실을 거쳐 병실 침대로 나의 거처를 옮겼습니다.
마비의 전이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말에 지레 겁이 났습니다.
'이대로 팔과 호흡기 마저 쓸 수 없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응급실 입원 당일 저녁부터 증상을 막기 위한 약을 투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 닷새 동안 한 팔엔 증상을 막는 약을, 다른 한 팔엔 링거를 꽂은 채 병실에 쥐 죽은 듯 누워있었습니다. 단 하루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날이 있었다면, 팔을 거쳐 호흡기까지도 그 증상이 번졌을지 모릅니다.
처음 전공의를 마주했을 때 였습니다.
“선생님, 저 평생 안줏거리가 하나 생겼어요! 나중에 유튜브나 에세이 같은 거 하나 써서 낼까 봐요!”
안녕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좌절과 탄식은 나를 갉아먹기 충분할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전공의 선생님은 그저 약간의 쓴웃음을 지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안녕하지 못한 내 모습의 이면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말은 완치의 가능성을 모른다는 말도, 또다시 발병할 확률이 있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끝을 알 수 없는 한 마디였습니다.
“퇴원일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이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 올 지 알 수 없다는 그 말. 빛이 들지 않는, 바람 한 줄기조차 불어오지 않는 캄캄한 어둠을 마주하게 됐을 때의 막연함은 그 무엇보다 나를 심연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한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종종 두 다리 버젓이 일어나 병원 문을 걸어 나가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그런 꿈에서 깨어 혹시나 발을 움직여볼라치면,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였습니다. 그런 날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죽여 펑펑 울었습니다. 꿈은 지독하리만치 잔인하였습니다.
나는 안녕할 수 없었습니다.
2023년 8월, 안녕하셨나요.
안녕한 줄 알았습니다.
그간의 1년, 나의 루틴은 재활치료의 연속이었습니다. 1년간 재활병원에 있으면서 안녕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나를 심연으로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치료사 선생님들에게 하나라도 더 하겠다고 말하며 한 방울 한 방울 땀을 쏟아내는 것이었죠.
이러한 과정은 시나브로 결실을 거두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앉은뱅이 시절에서, 열댓 번의 시도 끝에 제자리에서 일어나기, 약 5분의 시간은 걸리지만 보행기를 쥔 채 한 발짝 전진하기를 거쳐 의료용 지팡이를 짚은 채 한 발짝 전진하기 등 점차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도할 수 있는 자세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나도 치료사 선생님도 모두 놀라워하고 기뻐했습니다. 바람 한 줄기조차 없던 동굴에 틈새가 생기기 시작한 셈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다음의 한마디를 들었습니다.
“이제 슬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날 나의 핸드폰은 연락으로 뜨거웠습니다. 동네방네 소문내기 바빴거든요. 병원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한 노트북 역시 바빠졌습니다. 구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거든요. 비록 두 손 자유로이 밖을 돌아다닐 수는 없을지언정, 그럼에도 사회생활은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붙던 때였습니다. 부지런히 서류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습니다.
밖을 돌아다닐 때마다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은 안녕하지 못한 현실을 실감 나게 해주었습니다. 허우대 멀쩡한 젊은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은 시선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위아래로 빤히 쳐다보는 것은 기본이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을 때면 간혹 취기에 찌든 노인들로부터 시비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건 뭐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 이질감과 불쾌함 그리고 시비를 털렸을 때 찾아오는 짜증과 서러움의 생생함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안녕한 줄 알았습니다.
2024년 8월, 안녕하셨나요.
나는 안녕했습니다.
퇴원 후 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퇴원 후 하고자 했던 것을 모두 이루었습니다. 나만의 글 남기기, 다시 사회생활 및 자취하기 등. 이러한 것을 단계적으로 이루어가며 달디단 성취의 열매를 맛보고 있습니다. 일과 관련된 측면에서의 인정과 새로운 지식 습득, 다양한 생각을 텍스트로 맛보며 시야의 확장을 시나브로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하반신의 신경 역시 또바기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 속도는 현저히 느리긴 하지만, 일주일이 지날수록, 한 달이 지날수록 점차 운동범위와 지구력 등이 성장하고 있음을 몸소 느낍니다. 물론 아직 오른손에 꼭 쥔 지팡이는 건재합니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야 역시 아직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야에 점차 무뎌지고 있는 나를 보며, 나는 점점 안녕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한 발짝 내딛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행여나 넘어질까 두렵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일어나면 됨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몇 분, 몇 시간, 며칠이 걸릴지 모를지언정 나는 끝내 그 시간을 견뎌낼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나는, 안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