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퇴원 후 약 1년이 지날 시점에 받은 신경검사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아주대병원에 방문했다. 장장 약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대중교통을 타고 아주대로 향하는 길. 신경검사 결과를 검진받으러 가는 길은 늘 근심 어린 걱정뿐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임상은 점차 좋아지고 있음을 실감하는데(최근엔 왼쪽 종아리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치로 나오는 결괏값은 당최 예상할 수 없는 점도 있을뿐더러, 임상과는 다른 데이터를 행여나 받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막연한 우려감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짜 역행하는 데이터를 마주했을 때의 좌절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것이 더 큰 것도 있다.
8월, 한여름의 무더위가 부리는 기승을 손풍기로나마 잠시 피해 보기 위해 발버둥 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지팡이를 짚지 않을 채 걸어가는 발걸음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감각은 여실히 내 다리의 존재감을 뿜어내기에 충분하다.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내린 아주대병원 정문 앞.
오다니는 사람의 디테일한 부분은 달라졌겠으나, 전체적인 풍경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과 각자만의 차선의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차량들.
그 사이의 자잘한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여전히 그곳에 있는 하나의 목소리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고 가세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판넬 하나를 길거리에 떡 하니 놔둔 채, 호객 행위를 하는 그 목소리.
갓 대학생이 됐을 무렵, 그들의 스티커 하나'만' 붙여달라는 그 말에 덜컥 스티커'만' 붙였다가 불쌍한 아이들, 북극곰 등등 다양한 설교를 들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심지어는 네팔에서 왔다고 소개한 한 외국인은 다짜고짜 나에게 계좌번호로 후원하라며 강제 삥 뜯기를 시도하려고 했던 바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 눈엔.. 그저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밖에 비치지 않는 그들. 저들도 먹고살아야겠거니 할 수도 있겠다만, 그 북적이는 횡단보고 앞에서 가판대를 차려놓는 건 글쎄.. 선을 좀 넘는 게 아닐까 싶다.
잡설이 길었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기기로 수납을 마치고 접수처로 향한다. 키오스크 덕에 한결 편리해진 수납과 접수처. 다만, 그 앞 앤 키오스크 방법을 나이 드신 분들에게 진땀 흘려 설명하는 접수처 간호사가 있기 마련이다. 이 또한 조만간 사라질 풍경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잠시나마 스친다.
예약 시간보다 빨리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기 환자가 없는 덕에 시간이 얼마 채 가지 않아 금방 신경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다리 좀 어때요?"
"아 요즘 쉬는 날엔 지팡이 없이 조금씩 다니고 있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죠?"
"네. 요즘엔 왼쪽 종아리 쪽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네. 좋아요. 앞으로도 점점 더 좋아질 거예요."
약간의 스몰토크 이후 검사 데이터를 모니터에 띄워주셨다.
"어~ 검사 결과를 한번 볼까요~ 아직까지 정상 수치에 도달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검사 수치가 나오곤 있어요."
"지난번에 비해선 얼마나 좋아진 걸까요?"
"그럼 지난번 검사 결과를 한번 볼게요. 지난번엔 검사 결과가 아예 나오지 않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네요. 그래도 정상 수치에 비해선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예요. 요즘 뭐 운동 같은 거 하시나요?"
"네. 야근 없는 날이면 헬스장 가서 기구운동 하고 있습니다."
"음 좋아요.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해 주세요. 이제.. 1년 뒤에 보면 될 거 같네요. 검사를 너무 자주 해봤자 왔다 갔다 힘들기만 하고,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단, 1년 지나고 오면 초진이라서 소견서 같은 것도 떼와야 해서 시간이랑 진료비도 많이 드니까, 1년 이내로만 방문하세요. 아마 문자로 안내해 줄 거니까, 문자 안내받으면 예약하고 오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선생님."
"네, 내년에 봬요."
이번 검사 결과는 무탈히 지나갔다. 데이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니,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N/A"로 표기되어 있는 곳은 한 군데도 발견되지 않았다. 미약하게나마 숫자가 조금씩 조금씩 아로새겨져 있었다.
비록 그 수치는 낮을지언정, 숫자만 한 가득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이 병을 마주했을 때의 그 막막함과 알 수 없는 공포감 그리고 상실감 등에 둘러싸여 있던 기분을 느꼈던 때에서부터, 퇴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진짜 병원 밖을 나서기까지의 그 1여 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무튼.. 이번 검진도 무탈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