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잠시 뒤로 몸을 움직인다. 앞발에 체중을 실으면서 몸을 앞으로 가져온다.
물리치료 시간에 걷기에 쓰이는 부분동작을 몸에 익히기 위한 연습을 속행한다. 근데.. 무릎이 이상한데?
"선생님 왼쪽 무릎 뒤편에 뭔가 불편한 느낌이 남아있어요."
"아 그러세요? 어떤 느낌이실까요?"
"약간 뭔가 결리는 듯한 느낌? 백니 현상이 일어나는 거 같기도 하구요."
"흠. 괜찮으시다면 바지 좀 무릎 위로 걷어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볼게요."
백니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 쓰기 시작하니 또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흠 알다가도 모르겠네 이거.
심지어 왼쪽 발목엔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내 몸을 잡아주고 있는 치료사의 힘에 온전히 의지하는 느낌이 든다. 내 힘 지분 : 치료사 힘 지분 = 1: 100
이어서 발판에 발을 올려보는 동시에 무릎에 통증이 온다.
"선생님 잠시만요. 무릎에 통증이 와요."
"아 그래요? 그럼 발판에 발 안 올리고 좀 풀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앞뒤로 체중 옮기는 연습할 때 중둔근 힘을 이미 다 써버렸나 보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힘이 중둔근이랑 고관절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전근에서 냅다 들어 올려버리네. 허허.
이 불편함의 여파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선생님 왼쪽 무릎 뒤편에 불편한 감이 살짝 남아있는데, 밸런스 볼 위에서 스쿼트는 무리일 거 같아요."
"흠 그러시군요. 그러면 오늘은 데드리프트 대신 해볼까요?"
"오 좋아요. 입원 직전 운동시작했을 땐 자세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시도도 못 해봤거든요."
"좋습니다. 자 그럼 다리 먼저 벌려주세요."
바르게 서서 고관절을 쓰며 엉덩이를 뒤로 쭉 빼본다.
"오 자세는 좋은데요?"
"엥 그래요?"
"네. 복압 풀지 마시고 몇 번 더 반복해 볼게요."
의외네. 혼자 헬스장 다닐 적엔 허리에만 힘주는 느낌이라 바른 자극을 느낄 수 없어 포기한 운동인데... 맨손이라 그런가? 뭐지? 뭘까?
"아 그런데 확실히 엉덩이 불균형이 보이네요."
"그런가요?"
"네. 몸이 틀어지면서 자세가 취해지네요. 오른쪽 엉덩이에만 근육이 붙어있다 보니 그쪽으로만 힘쓰는 게 맨 눈으로도 보일 정도예요."
"아. 그쵸. 맞아요. 오른쪽 엉덩이에만 근육이 붙어있긴 하니까.. 확실히 자극도 오른쪽 엉덩이에만 오는 느낌이 있어요."
"왼쪽 엉덩이를 좀 더 타깃으로 운동을 해봐야겠네요."
그럼 그렇지. 불균형이 없을 리가. 근데 이게 환자복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맨눈으로 보일 정도면 대체 얼마나 심하다는 거지? 허허. 이걸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동영상이라도 하나 찍어달라 그럴껄. 할 껄! 그럴 껄! 찍어둘 껄!
난 껄무새임이 틀림없다.
"밍님 다리 모아서 일어날 수 있으시겠어요?"
"네, 되죠!"
"오. 할 수 있으시군요. 이건 잘하시니까 다리 모아서 스쿼트 해볼까요?"
다리 모아 스쿼트를 시도해 보긴 하는데... 분명 몸은 내려가진다. 내려가지는데 왜 안 올라가지지?
오히려 치료사의 힘에 기대 끌어올려지는데...
"쓰릅."
"침 뱉으시면 안 돼요."
아니. 이게 침이 새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근력 부족으로 침이 새어 나온 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세상 별 경험을 다 해본다.
오랜만에 손바닥 밀치기도 해본다. 치료실에 울리는 경쾌한 소리, 팡!
"어? 뭐예요? 이제 안 넘어가시네요?"
"어? 그러게요? 왜 안 넘어가지죠?"
치료사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져선 서로에게 의문을 던진다.
"오~ 하지 근력 좀 더 생겼나 본데요~"
"다 훌륭하신 치료사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에헤이~ 또 왜 그러실까. 자 그럼 이제 삼각대 위에 한 다리만 올려볼까요."
삼각대 위에 다리 하나를 올림과 동시에 온몸에 긴장감이 휘몰아친다. 보조테이블에 올려놓은 손, 삼각대 위에 올려져 있는 한쪽 발, 바닥에 닿아있는 다른 발 모두.
특히 오른발을 올릴 땐 허리가 함께 올라간다. 이를 놓칠 리 없는 치료사.
"허리 말고 엉덩이랑 허벅지 힘으로 다리 올리셔야죠. 근데 몸은 또 왜 이렇게 떨고 계세요~"
"아니 이게 제가 떨고 싶어서 떠는 게 아니에요."
"알죠 알죠~ 자 호흡 깊이 할게요."
"스으으읍~ 후우우우~ 스으으읍~ 후우우우~"
크게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점차 안정감을 찾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아니한 몸. 찰나의 순간 떨림이 덜해지는 느낌은 있으나 미세한 떨림은 도무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발목 부근에서 오는 떨림이 제일 심하다.
"선생님 발목 쪽 떨림은 전혀 멎을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아요."
"발목에 힘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만큼 발목이 열심히 일하고 있단 얘기죠. 자 좀만 더 버티고 내려올게요."
버티는 운동을 마치고 삼각대에서 온전히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이 가시질 않는다.
후. 행여나 넘어질까 봐 십년감수한 시간.
치료사의 보조 하에 지팡이 없이 병동 한 바퀴를 빠르게 걸어본다. 얼마 가지 못하고 왼쪽 발목이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선생님 발목이 흐느적거려요."
"다리 좀 더 높이 들어 올리세요! 멈추시면 안 돼요!"
"아니 잠깐 잠깐만요."
"어어! 좀만 더 좀만 더."
이게 내 의지로 걷긴커녕 치료사가 이끄는 템포에 맞춰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강하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렸다.
"밍님, 이거 제가 그냥 미는 느낌인데요."
"아 너무 티 났나요?"
"네. 너무 티 났어요."
"다리가 어째 맘대로 안 움직여지더라구요."
"오늘 조깅하는 속도 비슷하게 해 봤는데,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 거일 수 있어요. 앞으로 계속하다 보면 이 속도에 적응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새로운 지옥이 시작되겠구나 싶다. 적응해야 할 게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일상생활 쉬운 게 하나 없구나.
인간미 넘치는 우리네 병실. 이번엔 마카롱과 감자칩, 사과맛 음료수 그리고 파전을 나눔 받는다.
마카롱은 커피와 함께, 감자칩은 사과맛 음료수와 함께, 파전은 밥과 함께 먹으며 그 맛을 음미한다. 역시 사제음식이 최고다.
그와 함께 뉴스에선 꽃 소식이 한창이다. 올 해의 개화시기는 예년보다 조금 더 빠르다는 소식과 함께.
어쩐지 차창 밖으로 하나둘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니. 차디찬 겨울이 지나 어느덧 따순 봄이 다가옴을, 계절의 변화가 찾아왔음을 느낀다.
차창 너머 풍경엔 변화가 찾아오지만, 병원 스케줄엔 찾아오지 않는 변화. 이렇게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