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밸런스 볼 위에서 정자세로 서있는 채로, 무게중심을 좌우로 움직여본다. 확실히 발목에서의 불안불안함이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자칫하다 발목이 꺾이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긴장감이 조성된다. 왼쪽 다리로 체중을 온전히 실을 땐, 백니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도 들 정도.
"선생님 왼쪽 다리에 백니 나는 거 같아요. 뭔가 관절이 락 걸리는 느낌이네요."
"아 그러세요? 그럼 지금보다 살짝만 무게중심을 덜 이동시켜 볼게요."
앞뒤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보다 훨씬 스릴 넘치는 시간을 한껏 만끽한 후, 밸런스 볼에서 내려와 덤벨 데드리프트 자세를 취해본다.
"가동범위를 좀 더 늘려볼까요?"
"넵."
진짜 살짝 가동범위를 늘렸을 뿐인데, 엉덩이와 다리가 아닌, 허리에 부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덩달아 허리도 중립을 잃고 활처럼 꺾여 상체를 들어 올리기 바쁘다.
"어어 복압 풀지 마세요~ 허리 중립 유지해 주세요. 허리 다칩니다."
하지 힘이 부족하니 허리로 냅다 들어 올려버리네. 자칫하다 허리 훅 갈 수 있겠는데? 조심해야겠다.
조금 푹신한 매트 위에 발을 올려놓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오른쪽 다리가 앞으로 나가있을 때와는 달리, 왼발이 나가있을 땐 내전근에 많은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여~전히 엉덩이에서 버텨주어야 하는 힘이 부족하니 허벅지의 근육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왼쪽 다리. 이거 너무 허벅지만 두꺼워지는 거 아냐?
이러한 허벅지, 특히 내전근 원툴 덕분에 발이 자꾸 안쪽으로 휘어진다. 아 이러다 무릎 안쪽에 무리오기 시작하면 안 되는데... 특히 백니가 일어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몸의 체중을 앞으로 보낸다.
"백니 일어나지 않는 정도까지만 움직여볼게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정도인데 괜찮은가요 선생님?"
"네. 괜찮아요. 힘을 올바르게 쓰는 한도 내에서 자세를 잡아가는 게 중요하거든요."
무게 중심을 옮겼다고 말하기 민망할 수준의 가동범위로 몸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발목과 엉덩이에 많은 자극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시간엔 런지 자세를 취해본다. 다만, 서서 하는 것이 아닌, 한쪽 무릎 꿇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런지.
런지를 막 시작했을 당시엔 앉을 자세에서 절반 이상을 넘어가질 못했으나 어느 순간에서부터 다리를 완전히 펼 수 있는 수준까지 근력이 붙기 시작했다.
함정이 있다면 벽에 손을 대어 몸을 일으켜 세울 때 몸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다는 거 정도? 심지어는 왼쪽과 오른쪽 엉덩이 근육의 발달상태가 확연히 다르다 보니, 좌우 가동범위, 균형, 자극 등의 강도도 천차만별이라는 점.
오른쪽 엉덩이가 축이 되어 올라갔다 내려올 땐, 엉덩이에 자극은 잘 오지만 허벅지의 힘이 약해 허벅지가 자꾸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나타난다. 반대로 왼쪽 엉덩이가 축이 되어 올라갈 땐, 엉덩이 자체의 힘이 워낙 약하다 보니 허벅지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엉덩이를 타깃으로 하지만 허벅지 운동을 하는듯한 모습이 종종 나타난다.
이 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근육이 붙으면서 자연스레 해결해 줄 거라 강하게 믿을 뿐이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무릎 꿇고 스쿼트에 약간의 변형을 준다.
두 다리를 온전히 모아 무릎 꿇고 스쿼트를 수행한다. 양다리에 힘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해 보는 치료사.
"이젠 오른쪽 허벅지도 운동을 하는 게 느껴지긴 하네요. 그래도 아직 왼쪽이 더 많이 쓰이기 하네요."
개수와 세트 수가 늘어날수록 몸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역시나 서서히 왼쪽 허벅지에만 자극이 오는 기분이 든다. 동시에 자세를 살짝 잡아주는 치료사. 그리고 고스란히 주저앉는 나.
"아니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하.. 그러게요."
오른발만 뒤로 살짝 움직인 뒤 스쿼트를 다시 시작한다. 하나 하는 동시에 오른쪽 허벅지에 파들파들 많은 진동이 전해져 온다.
"오 좋아요. 오른쪽 허벅지가 일을 열심히 하는 중이네요."
"살려주세요."
"에이 엄살은."
어금니 꽉 깨물어가며 하나라도 더 수행해보려고 하지만, 10개를 다 채우지 못한 채 다리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색다른 매운맛이다.
바로 이어지는 다른 치료사 시간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뒤, 아령을 한 손에 움켜쥐고 번쩍 들어 올리는 동작을 수행한다. 이것도 중둔근에 많은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어깨 운동 하나 알려드릴까요?"
"오 진짜요? 네! 알려주세요."
"지금 이 자세에서 아령을 들어 올렸다 내리는 것만 천천히 해보세요."
내가 보내는 미심쩍은 눈초리를 읽었는지,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한번 해보라는 치료사. 마음속 의심을 지우지 못한 채 아령의 높이에 천천히 변화를 준다. 순식간에 마음속 의심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제가 괜한 의심을 했습니다."
"그쵸? 거 봐요. 이 싸람이 의심이나 하고 말이야."
"근데 이거 왠지 혼자 있을 땐 안 할 거 같아요."
"아니 그럼 왜 알려달라고 한 거예요!"
"헤헤. 그러게요."
그래도 자세 하나 배워갔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써먹..지 않을까? 써먹겠지? 그럴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드디어 외출과 외박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다. 각 월 1회 가능하다는 공지.
다른 병원은 외출/외박이 모두 풀렸다는데, 이 병원은 유독 외출/외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겠지. 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시점. 예년보다 빠른 개화시기, 앞다투어 서로서로 꽃구경 간 사진을 업로드하기 바쁘다. 이야 이게 또 참 마음이 멜랑꼴리 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올려주는 사진에 대리만족은 못할지언정 되려 마이너스의 효과만 느끼는 스스로가 참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나약해 빠져서야 원.
멜랑꼴리 해짐 다음은 뭐였을까? 노래를 들으면서 또 혼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우는 행태.
아니 분명 스스로 괜찮다고 했잖아~ 왜 또 그러는 건데~ 애꿎은 친구한테 지금의 감정을 온전히 털어놓기 바쁘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는 시간.
비슷한 감정을 수 없이 느끼며, 익숙해진 듯 이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리는 이 감정의 끝은 대체 언제쯤 찾아올까? 아니 그 끝이 오긴 하는 걸까?
때마침 귀에 꽂히는 가사를 뒤로 한 채, 조용히 흐느끼며 잠에 드는 한 주.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 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순 없어
<자우림 -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