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간극 속에서 배운 것들

관계의 철학

by 박민정

프로젝트라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일 자체보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거리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기능은 문서로 정리할 수 있지만, 사람의 기대와 감정은 문서 어디에도 적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의실에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믿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각자의 해석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똑같은 말을 나눴는데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똑같은 목표를 세웠는데도 각자 다른 그림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부딪히는 것이 정말 기능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대부분은 기능이 아니라 ‘이해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그저 서로의 세계가 닿지 않았던 작은 틈이 문제를 키울 때가 많았습니다.


프로젝트 경험이 쌓일수록 기술보다 관계가 더 큰 변수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간극을 줄이기 위해, 아주 사소한 것부터 바꿨다


그 뒤로 저는 작은 습관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능을 요청받으면 곧바로 개발을 생각하기보다 먼저 이유를 묻습니다.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어떤 상황에서 쓰이려는지. 목적을 듣고 나면 고객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 흐름까지 함께 정리해 다시 제안하면 대부분의 혼선은 그 자리에서 정리됩니다.


또 기술 설명 대신 상황과 이유를 먼저 이야기하고, 회의가 끝나면 서로 이해한 내용을 짧게 나누는 정도의 작은 습관들. 그저 확인을 조금 더 주고받았을 뿐인데 문제의 절반은 여기서 사라졌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가 바라보는 그림은 조금 더 선명해지고 함께 움직이는 속도도 자연스럽게 맞춰졌습니다.




관계가 먼저 정리되면, 기능은 따라온다


프로젝트가 편안하게 흘렀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항상 그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말을 더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맞춰 놓았던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


잠시 멈춰 “우리는 같은 그림을 보고 있는가” 확인하던 그 몇 분의 대화가 가장 많은 문제를 막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저는 기능보다 사람을 먼저 살피려 합니다. 요구보다 의도를 먼저 듣고, 일정보다 서로의 속도를 먼저 보고, 기술보다 상대의 불안을 먼저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관계가 단단해지면 기능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결국, 사람을 잃지 않는 일이 제일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론은 점점 더 단순해졌습니다.


화면을 잘 만드는 것보다 사람을 놓치지 않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저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시스템인가, 아니면 관계인가?”


이 질문을 붙잡고 있으면 복잡했던 것들이 천천히 정리됩니다. 갈등의 결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서로의 거리는 그만큼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프로젝트는 ‘일’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간극을 마주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 생각을 다시 떠올릴 것 같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관계를 맞추는 일. 결국 그 과정이 가장 단단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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