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을 먹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좋은 글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는 않을 만큼의 열정과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도서관이 개관하는 시간에 가서 폐관하는 시간까지 즐겁게 글을 썼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도서관 건물 아래에 있던 작은 밥 집에서 배를 채우고 습관이 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압박감을 견뎠다. 누구도 내게 그러라 시킨 사람이 없었고 글을 쓰는 삶을 환영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롯한 나의 선택이었기에 어떻게든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방황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 나는 항상 말이 없었고 소심함으로 똘똘 뭉쳐 적응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아이였다. 어떤 상황에서 나의 의견을 힘 있게 피력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 다수에 휩쓸리듯 다녔지만 소수점처럼 남아 결국 이상한 아이처럼 덩그러니 남곤 했다. 이런 성격인지라 말을 하는 것보다 쓰는 게 편했고 문장 속에 나열된 내 모습은 세상 밝고 말 잘하는 달변가 또는 또래에 비해 당찬 아이쯤으로 비치곤 했다.
어느 날, 내 글이 마음에 든다는 어느 매체의 연락을 받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여쯤이 되었을 무렵이었고 그 전화 한 통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려 뿌리마저 뽑히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 스쳐갔던 수많은 기대와 허황된 상상들을 나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완벽히 기억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뽑히기도 전 그대로 고꾸라져 부러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 버렸다. 당신의 글이 마음에 들어 연락을 했다. 책을 내줄 테니 소량의 돈을 내고 출간된 본인의 책도 다수 사 주시라는 내용의 말. 상대방은 너무나 쉽게, 너무나 당당하게 내 의사와 기분 따윈 고려치 않고 유쾌한 듯 말하고 있었다.
나의 선택은 '아니오'였고 돈과 맞바꿀 만큼 내 글이 만만하지는 않아하며 자존심을 부렸다. 그렇게 시작한 내 글이 많은 걸 누리게 해 줬을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바란 글을 향한 모습이 그런 건 아니어서 많이도 울었다. 겨우겨우 위로를 해보려고 해도 실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꽤 오랜 시간 힘이 들었다.
그 후에 글을 향한 나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거니?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면서. 너는 아직 여기까지인가 봐. 하며, 새벽을 이기려고 눈을 부릅떴던 기억. 내게 글은 위로 그 자체였는데 나의 위로였던 행위가 이렇게 타락한 듯 되었냐고 말이다.
그때의 나는 많이 어렸고 세상의 이치를 알지 못했기에 상처 받았었다. 지금의 나는 그날의 나보다 어른이 됐고 세상 돌아가는 중심이 어디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때의 내겐 좌절이었으나 현재의 내겐 좋은 추억, 좋은 경험쯤으로 인식하게 됐으니. 끄적거리는 글은 여전히 나에게 위로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