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면서 근심도 많았지만 비례하게 설렘도 있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내 의견과 생각을 우선시할 수 있고 타인의 참견과 간섭은 조언으로 받아들이면 그만, 좌지우지될 필요성이 없어졌음에 자유를 느꼈던 것이다.
대학 막바지에 돌입하면서 버킷리스트 적기를 즐겨했다.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나 하고는 싶은 것들의 나열이었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거였다. 대학을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어른이 될수록 안정된 회사와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은 좀 과장해서 전생에 어느 동네 하나 정도는 구했던 사람들의 특권이 돼버린 것 같았다.
회사생활의 로망은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더 각별 해졌지만 그만큼 무서움도 짙어졌다. 뭐랄까 갓 태어난 초식동물이 사자, 호랑이 집단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정신단련과 마음 수양이 얼마나 잘 될까 이 말은 나를 수련해야 할 상황이 얼마나 많을지, 그러므로 나는 보살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뜻과 비슷했다.
첫 면접은 어느 기업이었고 일렬로 줄 서 들어가 자리에 착석하면서 AI 로봇처럼 나를 부각해야 했던 상황을 여전히 기억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내 손으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입사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인사담당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였지만 그들이야 차고 넘치는 게 지원자들이었을 테니 놀란 것도 그때뿐,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서 내가 선택한 건 연극이었고 나는 내 인생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것 같았던 새로운 삶에 도전이란 걸 했다. 이유는, 나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시 출근을 하고 정시 퇴근을 가장한 알 수 없는 퇴근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 안에 벌어질 수많은 전쟁을 못 견딜 것이라 여겼다. 20대의 나는 썩 용감하지 못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게 있어 로망이던 회사생활은 현실적으로 다이 리스트가 되었다. 30대가 된 나는 여전히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