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무제

전경린,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by 새벽뜰
"세상엔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언어나 관념은 현실을 못 따라가지. 그래서 자기만의 감수성이 필요한 거야. 말로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느끼는 거지."

<전경린,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中>


맴도는 마음을 뱉어내면 초조함은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온다. 짝사랑을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백이라고.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깊어진 인연에 기뻐하거나 애써 숨겨 놨더니 문득 터진 마음 때문에 이어온 인연마저도 잃게 된다거나. 하지만 어느 쪽이든 1% 더 기울어진 마음을 따르다 보면 후회는 최소화되는 듯했다. 모든 선택이 반드시 해피엔딩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방황이 가장 길었던 시절에 너를 만났다. 굳이 알릴 필요도 없고 소식을 전할 필요도 없이 성큼성큼 멀어진 관계가 되었어도 추억이라는 우아한 단어 앞에 스르르 녹아내려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정쩡한 감정의 연속선상에 낡아서 너덜너덜한 책 같아진 이야지만 이런 추억이 있어 든든하다는 느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짙어졌다.





나는 이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수줍음으로 단장하고 섰던 나는 옹골찬 여인이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추억이라니,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이던가.

어떤 제목을 붙여도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색해 마음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기억이 추억이 되는 시간은 쏜살같이 찾아왔다. 네가 걷던 거리를 이젠 내 곁의 사람들과 걸어본다.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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