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서 좋은점은 너무 많으니까

강박증적인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로 했다

by 새벽뜰


앞으로 몇 년간 더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작가로서의 나의 새로운 다짐이 있다면 남의 책에 밑줄을 절대로 안 치는 버릇부터 고쳐볼 생각이다. 내 정신상태 내지는 내 지적 수준을 남이 넘겨짚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일종의 잘난 척, 치사한 허영심,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폐증이라고 생각되자, 이런 내가 정 떨어진다. 자신이 싫어하는 나를 누가 좋아해 주겠는가.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中>



옷가게에 들러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남편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어떤 옷을 사야 내 만족도가 가장 높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고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예쁘다고 다 입어 보지 않게 됐다. 무엇보다 편해야 하고 씻고 벗고 가 유용해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용성을 디자인보다 더 높이 평가하게 된 거다. 어쨌든 몇 군데 매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옷 몇 가지를 골랐다. 피팅룸 앞에 서 전신 거울에 나를 비춰보며 옷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 찰나, 나의 예민함인지 진실로 상대방의 까칠함 탓인지 의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매장 직원이 내가 들고 있던 옷을 보자마자 "니트류는 입어 보실 수 없어요." 말했다. 무표정한 얼굴은 무슨 경고를 하듯이 위협적이었다. 그러던 중 옷을 고르던 내게 다가와서 내가 들고 있던 옷을 가리키며 "고르셨으면 주세요. 새 걸로 드릴게요." 하며 쇼핑 진행 중인 나에게 굳이 와 다시 말하는 거다. 나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이건 뭐지? 하고 말이다.


나의 경험이지만 사람이 예민해서 좋을 건 별로 없다. 어쩌다 좋다거나 장점이란 말을 듣는 날도 있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으로 어르고 달래는 사탕발림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나의 예민함과 여린 마음은 인간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고 다가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방어막을 설치하는 습관도 함께 가져다주곤 했다. "너에게 말을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하게 돼." ,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 된 건가 의심하게 됐다. 내가 지뢰밭이 된 것 같았다. 특히 유난히 직설적인 사람과는 맞지 않은 구석이 많았고 그런 사람이 나에게 한마디 건넬 때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네가 이해해. 그 사람 성격 알잖아."


물론 나 역시 그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되도록 괜찮으려 미리 마음 채비를 야무지게 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을 물거품 되게 만드는 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였다. 그것 참 억울하지 않은가. 그들의 성격은 알면서 나의 성격은 왜 모르는 것이 되어야 하는지. 사회생활을 하고 직급이 올라가 위치가 높아질수록 두루뭉술하지 못해 마음에 말들을 많이 담아두는 나는 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예민한 사람은 곧 피곤한 사람이 되고 비위 맞추기 힘든 사람이 된다. 마치 고슴도치 한 마리가 된 기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진지하게 묻고 싶다. 과연 예민하다는 게 나쁘기만 한지, 내가 그랬듯 강박적인 죄책감까지 가져가며 뜯어고쳐야 하는 단점인지. 어떤 성격이든 완벽한 만족은 없는 것이고 수만 명의 사람이 칭찬일색 하는 성격의 소유자도 누군가들에겐 저평가를 받는다. 사람의 성격을 두고 평가를 한다는 자체가 난처한 일이지만 어차피 무엇을 해도 트집을 잡으면서 헐뜯는 무리는 꼭 있기 마련이다. 예민하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에게 조심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 말이나 쉽게 하지도 않지만 건네는 말은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애를 쓴다. 상처 받아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고 했듯이 예민하니까 공감의 폭도 넓어지는 것이고 입장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똑같이 완벽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의 완벽함을 굳이 실현해 보여야 할까. 나의 예민함이 사라지면 그들은 다시 주문할 것이다. "우유부단한 성격 좀 고쳐주시면 안 돼요?"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상대방의 감정 파장을 손상시키려 들지 않는다. 열정적인 평화주의자로 살 수 있는 것도 예민함 덕분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작은 위로를 받았다면 그건 아마도 나의 예민함에서 발생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를 포함해 당신의 예민함을 가슴 깊이 인정하며 받아들인다. 티는 나지 않겠지만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