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부끄럽지 않았던 이유
재생되는 아련한 기억들
잠을 자는 건 아니지만 눈을 감고 가만히 있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의식이란 녀석은 나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아주 먼 옛날의 어디쯤 인가로 나를 데려간다.
가난했지만 가난이 그리 부끄럽지 않았던 이유는 그 시절의 가난이 우리 집에만 머물렀던 고유한 불청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집을 건너면 같은 반 누구의 집, 또 한 집을 건너면 친하지는 않아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던 누구 부모님의 가게. 겉보기에 풍요롭고 화려해 보이는 아이였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나눠지는 이야기는 비슷했다. "엄마랑 아빠가 싸웠어, 돈이 없대." 가난이라는 건 각각의 무게만 달리해 있었을 뿐, 우리는 모두 엇비슷한 가난의 무게를 느끼며 자랐고 그렇게 어른이 됐다.
아주 늦게 장만한 집이었다. 오랫동안 전세를 오가며, 해가 바뀔 때마다 집주인의 말 한마디에 오들오들 추위에 떠는 사람들처럼 마음 조여가며 보낸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벗어나 진짜 주인이 되는 날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가능해졌다. 남들 다 가져본 집을 아주 늦게 가지게 된 것이 슬프고 쓸쓸했지만 위로가 되고 자부심을 느낀 것은 동네에서 우리 집이 가장 좋았다는 것과 은행이든 사람이든 어디에도 돈을 빌리지 않고 오롯이 부모님의 힘으로 집을 마련했다는 점이었다. 누구네 집은 신발장까지만, 현관까지만, 거실까지만 실소유자가 됐지만 우리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공간이 진짜 우리의 것이었다. 이 모두 다 밤낮없이 희생하며 일하신 부모님의 공이었다.
내가 가장 많은 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를 오랜만에 가보고 싶었던 건 변화의 흔적이 궁금한 이유도 있었지만 아기 때부터 조금 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됐을 때까지 폭풍우처럼 쏟아져 무너지기를 반복하던 감정들과 , 그래서 많이 미워했고 제발 벗어나게 해 달라 바라고 바랐던 왜곡된 내 기억들과 화해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골목을 꺾으면 보이기 시작하던 집들이지만 그 흔적은 모두 사리지고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을까.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또 누군가에게 팔아먹혀 버린 걸까. 새롭게 지어진 오피스텔 땅에는 내 추억이 잘근잘근 짓이겨져 있을 것이고 우리 가족의 웃음과 눈물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흡수가 되어 있겠지. 그 기억이 그리웠지만 원망도 했던 사실이 미안해 화해하려고 찾아왔는데 내가 너무 늦어버린 탓에 화해도 못하고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됐구나. 결국 애증의 시간이 나를 자라게 해 주었던 것인데 고마웠다는 말도 못 하고 나의 추억은 실종이 됐다.
골목을 되돌아 나오면서 참았던 눈물이 났다. 굳이 멈추려고 애쓰지 않았다. 막혔던 물꼬가 터지는 것처럼 눈물은 넘쳤다. 누군가 본다고 한들 잠깐의 시선만 머물다 말겠지 싶었다. 감정의 요동은 어디서부터 발생이 된 걸까.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의 증거가 소멸되어 사라졌다. 이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할 새로운 공간이 돼버린 그곳에서, 그렇게도 삭제하고 싶었던 기억들을 갑자기 잃었다. 처음부터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날 내가 울었던 이유가 완벽히 충족되지는 않는다.
집을 산 건 부모님인데 나는 내가 집을 산 것처럼 옛집터를 방황하며 , 감회가 새롭다며 , 청승맞게 울었다. 눈물이 멈춘 후엔 주객이 전도가 된 것 같은 상황에 민망해졌다.
그날, 여름 해가 길어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