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낡은 서랍을 열어보는 일

by 새벽뜰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서랍은 늘 지나치기 일쑤였다. 내일 정리 하지, 다음 주쯤 꺼내 보지, 이 일만 끝내고 나면 열어볼게, 아주 많은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맴돌아서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어떤 이유들로 봉인해 놓았던, 오래되고 낡은 내 서랍장을 열어보게 되기까지 시간은 필요했고 여유가 필요했다. 마음은 먹었지만 손이 가지 않았던 그래서 핑계 삼아 내놨던 이유라는 게 고작 '아직'이라는 쉬운 말이었다. 서랍장을 열기 위한 열쇠는 많이 필요했다. 하나를 열었더니 또 다른 열쇠가 필요했고 또, 또, 또.

이런 새벽이 되면 용기라는 게 '또'어디선가 나타나서 모든 열쇠를 찾아 서랍을 열어보게 되는 것이다.

묶어놓고 풀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들과 사람들과 추억들과 하물며 나의 오래된 그림자까지 모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나를 기다린 걸 알았을 땐, 그저 눈물이 핑-하고 고여 들었다. 숨 가쁘게 살아 돌아보지 않고 돌아보기엔 아직 얼마 오지 않았지 라며 스스로 자위하고 있었던 내 어리석음이 빛을 발했던 순간 나는, 옛 모습의 나를 추억이랍시고 꺼내 보려 하지 않았단 걸 알았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추억, 현실과 일상에 밀려나 서랍 속에 묻혔던 기억이 올라와 마음을 두드리는 오늘 같은 밤.

문득 용기 내어 열어보니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일 뿐, 변한 건 나였구나 깨달았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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