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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뜰 Jul 04. 2021

14. 나를 내려놓고 선을 그었다


내가 너무 무거운 날이 있다. 몸무게로 따지면 족히 1톤은 넘을 것 같은 날이 있다. 유난히 이런 날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는데 잠을 많이 못 잤다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거나 기분이 몹시도 우울할 때가 그렇다. 사실 이런 날들이 나에게만 찾아오는 불청객은 아니니 심각하게 생각할 건 없겠지만 주기가 꽤 자주 찾아오니 이마저도 스트레스가 됐다.



어느 날 아침,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내가 신경이 쓰였는데 정확한 정보가 없어 불안했던 몇몇 일들이 생각났다. 얼마 전 맞췄던 콘택트렌즈의 착용감이 그동안이랑 영 달라서 구매처 안경점에 전화해 문의해 봐야겠다던 내 생각, 남편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보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 해당 부서에 전화해 봐야겠다던 내 생각. 아기 예방접종과 우리 부부 예방접종에 대한 사전 정보 확인 등, 사실 이건 뭐 전화 한 통이면 해결이 될 일이었고 내가 부지런만 떨면 다 오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육아는 정말 저 세상 텐션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기를 잘 케어해야 한다는 내 완벽주의, 신경을 늘 쓰고 아기를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매일 반복되는 일이 나를 참 무겁게 만든다는 걸 새삼 느꼈는데 그렇게 죽어라 다짐해도 잘 되지 않던 단념과 포기가 조금 되려는 시기가 있어 짚어보니 내 고질병인 통제력과 강박관념을 조금씩 포기하면서부터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내 무겁던 몸마저도 함께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 힘든 게 아니야. 세상 모든 엄마가 너와 같은 마음일 거야, 넌 충분히 잘하고 있




아기를 낳고 키운 근 8개월 동안 난 한 번도 진실되게 , 나 스스로에게, 이런 따뜻한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단 걸 알았다. 나를 깎아내리고 왜 그것밖에 못하니, 초보 엄마 티 내니? 라면서 자신에게 윽박이나 지를 줄 알았지. 참, 너무하다 싶었다.



우리 아기는 원래 먹는 걸 즐기지 않는 아기다. 키만 컸지

살이 별로 찌지 않아 보는 사람마다 참 길구나 한다.  이유식을 하면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당연히 처음 먹는 음식이고 씹고 삼키는 행위가 처음인 아기인데 잘 먹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내 실수가 점점 부각이 됐다. 나도 모르게 많이 먹는 또래 아기와  비교하면서 속상해했다. 너무 바보 같은 짓을 한 거다. 아기도  자기 스타일이 있는 거고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익숙해질 때까지 적응해야 하니 충분히 기다려줘야 하는데  엄마라는 이유로 욕심이 과했다. 엄마라는 이유로 더 인내했어야 했는데... 가만히 앉아 못 먹는 것도 당연한 것을, 난 통제가 안된다며 화를 참고 말이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을 부자연스럽게 만들려 하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시간이 가면 다 좋아질 것들,
 나의 페이스에 맞추지 말 것,
 나의 불안이 걱정을 키운다는 걸 기억할 것.
아기는 너무나 건강하다는 걸,
눈으로 매일 보면서 왜?



쏙쏙 보이기 시작하는 내 많은 부분의 욕심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차근차근해야 할 일을 해결하고 정보도 입수하고 렌즈도 교체하고. 별 것 아닌 일에도 이렇게 에너지를 쓰니 늘 고갈이 될 수밖에. 숙제 같은 일을 해결하니 아기에게 갖는 내 마음도 "고마움"으로 변할 수 있었다. 건강해줘 고맙고 잘 웃어줘서 고맙고 밥도 너에게 맞게 잘 먹어줘서 고맙고,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 그냥 존재만으로도 다 고맙다고. 고민하는 일상의 일들은 사실 너무 쉽게 해결되는 부분이 많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일이 바빠 도와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면서 말하곤 했다.







조바심 내지 마,
좀 덜 먹을 수도 있지,
아무 문제없어.
점점 더 좋아질 거야.
몸 상한다. 스트레스받지 마






내려놓으며 되도록 건너지 못하도록 감정에 선을 깊이 그었다. 그랬을 때의 내 만족과 마음 상태를 잘 기억해야지.









곧, 시국이 좋아지면 우리들 제대로 된 산책을 하고 멀리 여행을 떠나자. 나의 통제력, 강박적인 것들 모두 모두 가뿐히 날려 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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