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만에 긴 머리카락을 단발머리로 잘랐다. 글쎄, 사람 마음이란 게 가늠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불현듯 그리 마음을 먹은 내가 아직도 의아하다. 솔직히 늘, 항상, 같은 것을 고집하는 내가 너무나 지겨웠다. 비슷한 사물, 비슷한 스타일,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은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내가 나인 것 같은 색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이를 먹었는지 이젠 관리하기 편한 게 좋고 더 이상 무겁지 않은 상태가 극도로 좋아진 탓이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이 반으로 절감이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분이 싹 바뀌어 산뜻해져 가고 있다는 것인데 치렁치렁 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그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 머리카락 끝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던 마음속 얼룩, 먼지, 구김들도 함께 잘려 나간 느낌이었다. 단발머리를 썩 좋아하지 않았었고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아 망설인 것이 무색하게 난 너무 만족하며 지내는 내가, 역시 의아하다.
고집을 부려서 내가 나를 질리게 만든 경험은 참 많다. 마음에서 단발머리를 고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없어 긴 머리카락을 고수하기를 십여 년이었는데. 머리카락 하나 자르는 것에도 용기라는 게 필요했던 걸 보면 내가 너무 지나치게 선택이란 걸 어려워하고 있었구나 생각을 했다.
보이는 나도, 보이는 나도, 모두가 아름답기를.
가을이 되었고, 난 십여 년 만에 단발머리를 했다.
몹시도 유쾌한 날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