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단상 #1 _ 어디에 가장 많이 돈을 쓰고 계신가요?
하루 8시간 이상 일이 끝없이 밀려오는 전문 직종이나, 일을 밤낮없이 하는 워커홀릭, 또는 일 끝나고 체력이 고갈되어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소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과 책임이 쏟아졌던 시기에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디에 가장 많이 돈을 쓰세요?" 나는 잠시 카드 명세서에 찍혀 있었던 내역들을 떠올려 보았다. 약 80% 이상이 전기차 충전비였다.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 라이프를 산지 너무나 오래되어서 출퇴근뿐만 아니라 모든 모임과 약속, 심지어 동네 마트를 갈 때에도 자차를 이용하다 보니 나에게 있어서 자동차는 매우 소중한 아이다. 그 아이가 먹고 마시는 연료비가 카드값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나 카드 값에서 대부분이 충전비인데?" 이렇게 대답하니 "맞다.. 제가 OO 님이라도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쇼핑도 안 하고 여행도 안 하고 재미없지 않아요?" 라고 되물었다. 인생이 꼭 재미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지루한 하루가 행복에 더 가까운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고 넘어갔다.
본래부터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입고 꾸미는 것에 과소비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때는 내가 갖고 싶었던 것들을 다 갖고, 갖고 싶지 않았던 것들까지 소비했던 때가 있었다. 딱 봐도 일회성의 만족으로 끝날 아이템처럼 보이는 - 오래 지속 가능하지 않은 - 한 철 유행하고 말 아이템들에 돈을 써놓고는 왜 샀지? 하며 후회했던 쇼핑도 여러 번이었다. 특히, 집에서 용돈을 타서 쓰다가 사회 초년생이 되어 내 이름이 박힌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왔던 그 시절에 1-2년은 벌고 쓰고 벌고 쓰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시기도 한때였던 것 같다. 그래도 사회 초년생 3년 동안 벌고 쓰는 와중에 야금 야금 모은 돈을 들고 영국 1년을 살고 왔으니 얻은 것도 많다. 그 이후로는 패션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회사 분위기를 따라가기 위해 눈치껏 사회생활용 소비를 해야 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쇼핑에 대한 욕망은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올 때마다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때론 쇼핑이 불안함의 해소 창구가 되어 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찬란하게 젊고 화려했다. 지금은 '지루한게 행복한 건데?'라고 말하지만, 그때는 '지루하면 어떻게 살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되도록이면 쇼핑을 할 때마다 '이 아이와 오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작은 소비에서도 이게 '내가 선호하는 취향이 맞나?'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상업용 콘텐츠에 너무 많이 노출 당해서 대중적인 취향에 나도 덩달아 혹하게 되는 것은 없는지를 검토해 보고 싶은 것이다. 20대의 나를 생각하면 나의 기호가 매우 뾰족한 편이었다. 넌 참 취향이 독특하다며 어떤 집단에 가든 튀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나도 내가 헷갈리지가 않았다. 너무 잘 알 것 같은 게 나였다. 그런데, 사회생활이 깊어질수록 뾰족했던 나의 기호는 많이 둥그레졌고 무난한 사람이 되었다. 학창 시절 때 학교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사람은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청개구리 기질이 있었던 나는 사회화가 죽어도 되기 싫었지만 사회에 속한 일원이 되니 아무리 몸부림쳐도 내 맘처럼 안 되는 것이 많았다.
이제는 나도 내가 헷갈릴 때가 있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거 맞지? 남들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하게 된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면 차라리 남들에게 '왜 이런 걸 사? 왜 이런 걸 좋아해? 넌 참 이상해.'라고 이해받지는 못했지만 '그냥 내가 좋아서!'라며 1초 만에 대답할 수 있었던 뾰족했던 20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도 책상 앞에 여전히 '나'스러운 소비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이게 내가 좋아하는건가? 맞아? 살까? 말까?’ 굉장한 내적 갈등과 고민의 과정을 통해 구매된 아이들이 많아서, 오히려 그러한 갈등을 거쳐 내 앞에 온 너희들이라 애착이 가기도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말 없는 사물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