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세상에서 알고리즘 상사와 사는 느낌?

알고리즘 상사를 향한 인정 욕구

by 미다시

9월 8일, 밤 사이에 달과 지구, 태양이 일렬로 정렬되는 3년 만에 찾아온다는 '블러드 문'을 볼 수 있다는 기사를 보고 잠들었더니 새벽 3시쯤 눈이 떠졌다. 혹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귀신처럼 조용히 일어나서 베란다 창문으로 향해 갔다.


'음... 붉은 달인가? 붉긴 하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한계다. 블러드 문을 담기에는 캄캄한 밤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은 다른 세상으로 통과하는 아주 작은 문틈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처럼 형체가 모호했다. 다시 귀신처럼 조용히 침대로 와서 잠을 청했다.


“알림이 5개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것은 알고리즘 세상에서 나에게 보내온 알림 들이다. 침대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알림을 확인한다. 반쯤 떠진 눈으로 뉴스 알림 들을 확인하고 어젯밤 자기 전에 올려놓은 글에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는 기분 좋은 알림까지 확인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정신이 든다.


"OO야, 사랑해. 고마워."


어느 날부터 매일 아침 루틴이 되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항상 나 자신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에게 해주는 가벼운 아침인사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알고리즘 세상에서 알고리즘 상사와 사는 느낌?

아침을 시작하며 다시 알고리즘 세상으로 들어간다. 어제의 내가 흘려놓은 흔적들이 오늘의 나에게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어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검색했고, 무엇을 기록했는지에 따라서 오늘의 내가 결정되는 기분이 든다. 알고리즘 세상에서 과연 나는 순수한 "오늘", "이 순간", "현재"를 살 수 있을까? 어제의 복붙 같은 오늘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알고리즘의 중력으로부터 '잠시 멈춤'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핸드폰을 강제적으로 내려놓을 때뿐이다. 아날로그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 시간을 버틸 때 알고리즘 바깥에서 우연히 반짝이는 영감과 생산적인 생각들이 별똥별처럼 떨어진다.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알고리즘 초기화를 하고 있다. 알고리즘의 최적화의 편의성보다는 마치 나의 관심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좁아진 시야를 갖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 세상에 있자니 순식간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 같고, 알고리즘 바깥에 있자니 세상과 너무 등지는 것 같아서 적당히 알고리즘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하는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려면, 엄청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세상에서 보고 듣고 할 것들이 넘쳐난다. 한 세상에서만 잘 살아도 될 텐데,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알고리즘 세상에서 먼저 알고리즘의 인정을 받은 이들은 알고리즘 타는 법을 학습하고, 추측하여, 공유한다. 앞으로 회사에 직장 상사도 알고리즘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직장 상사가 최종 컨펌한 보고서도, 알고리즘이 선호하지 않는 콘텐츠라면 세상 바깥으로 내놓아도 노출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최종 컨펌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인가?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알고리즘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예전에는 고객을 '왕'으로 여기라고 했는데, 요즈음에는 알고리즘을 '왕'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인간 리더인 나의 결정이 알고리즘 세상에서 반드시 베스트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의사 결정의 주도권이 인간에서 AI로 이동한 것은 아닌지.


보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기 위해서, 알고리즘한테 AtoZ 보고서를 만들어서 어떤 아이디어를 채택할지 물어보는 것이 알고리즘 세상에서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물 - 동시에 인간이 원했던 결과이면서 - 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인간 상사에게 "왜요?"라고 물으면 공적인 이유든 개인적인 이유든 뭐라도 들을 수 있는데, 알고리즘 상사에게는 "왜요?"라고 물어도 본인조차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단지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나에게 학습된 로직이 이러해서 이런 것 같다고.



타인 인정 욕구보다,

알고리즘 인정 욕구가

더 강해지고 있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