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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왜 마음이 젖는걸까?

1편 손등으로 비를 재던 사람

by 루담

비가 내릴 때마다,

마음 한켠이 먼저 젖는다.

왜일까.

그 답을 나는, 아주 오래전 어떤 우산 아래서 들었다.

비 오는 날엔
우산보다 먼저
손등부터 내밀어보는 사람이 있다.

“어디 보자, 많이 오는갑다.”

그건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손바닥이 아니라, 늘 손등을 먼저 내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고,
내가 들고 있는 우산을 한번 훑어보신다.

“이건 비 많이 새겠다잉.”

비가 새는 건 우산이었지만,
그 말은 꼭
내 삶 어딘가가 허술한 것 같아서
괜히 쭈뼛해졌다.

비 오는 날엔
사람들이 천천히 걷는다.

그럴 땐
할머니는 꼭 말을 건넨다.

“요새 애들은 왜 그리 비를 피해 도망다니노.
우산 쓴다고 다 안 젖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말에 아무 말 못 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우리 할머니는,
비 오는 날
빗속을 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마지막으로
우산 속에 감싸 안아줬던 날도,
비가 왔다.

그때도 할머니는 손등을 내밀며 말했다.
“많이 온다… 니 우산 안 챙겼제.”

그 말이,
지금도 내 삶을 감싸고 있는 것 같다.
우산보다 더 든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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