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학도의 역사 실험
이인좌의 난으로 이어진 의심의 역사
조선의 18세기는 유난히 음식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은 간장게장과 홍시다. 이 두 음식은 밥상 위에서는 평범했지만, 정치의 식탁에 오르는 순간 독이 될 수 있는 은유가 되었다.
1724년, 경종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병약했던 왕이었기에 사인은 ‘병사’로 정리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형이 죽자마자 왕위에 오른 연잉군, 곧 영조.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서 조용히 떠돌기 시작한 말이 있었다.
“연잉군이 게장과 홍시를 진상해 같이 먹도록 하여 교묘하게 왕을 독살했다.”
당시 이 말은 단순한 음식 궁합 이야기가 아니었다. 너무 매끄러운 권력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언어였다. 왕은 죽고, 의심은 남았다
경종의 재위는 늘 불안정했다. 후사가 없었고, 몸은 약했으며, 노론은 노골적으로 연잉군의 대리청정을 주장했다.
소론과 남인의 눈에 그것은 ‘국정 보완’이 아니라
사전 정권 교체 시도로 보였다. 그래서 경종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영조는 즉위와 동시에 정통성의 질문을 받는다.
“왜 당신이 왕인가?”
영조는 제도와 언어로 답하려 했다.
탕평을 말하고, 효를 강조하고, 의혹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그러나 의심은 금지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못한 의심은 다른 형태로 변한다.
그 순간이 바로 1728년, 이인좌의 난이다.
의심이 칼을 들다
소론과 남인이 결합한 반란 세력이 내세운 논리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경종의 죽음은 석연치 않다.
연잉군은 정당한 계승자가 아니다.
노론은 왕을 바꿨고, 국가를 사유화했다.
게장과 홍시 이야기는 이때 다시 소환된다.
이제 그것은 독살의 증거를 넘어 반란의 정당성이 되었다.
영조는 반란을 진압하고 관련 세력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그 이후 오랫동안 난의 뿌리였던 영남 지역 출신의 중앙 정계 진출은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이 난이 남긴 간장게장과 홍시의 의혹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의심은 영조의 치세 내내 따라다녔고,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았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두 음식은 절대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궁극의 금기다.
역사 실험과 그 결과
30여 년 전, 팔팔하던 서울 깍쟁이 사학도였던 나는 경상도에서 유학 온 과동기들과 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과연 간장게장과 홍시를 같이 먹으면
‘피똥’을 싼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가?”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어린 사학도가 이를 증명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스스로 몰모트가 되는 것.
실험쥐를 자청한 나에게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00야, 니 글다 피똥 싼데이!”
그날 저녁,
나는 간장게장집에서, 따로 공수한 홍시를 함께 먹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혹은 은근히 입맛을 다시며 지켜보는 친구들 앞에서...
결과는…
아, 정말 잊히지 않는다.
죽을 뻔했다.
너무 맛있어서....
연잉군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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