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간] 조선의 브런치 작가, 노상추

5화 노상추

by 초로의 궁사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 쉰 살.
현대인에게 50세는 ‘제2의 사춘기’와도 같다. 자녀는 어느덧 장성해 품을 떠날 채비를 하고, 직장에서는 정점에 올랐으나 곧 내려올 길을 걱정해야 하며, 노후라는 막막한 안개가 눈앞에 드리운다.


그런데 여기,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던 한 남자가 있다. 200년 전 조선 땅에서 그 마음을 ‘글’로 쏟아낸 사람. 바로 노상추(盧尙樞, 1746~1817)다.


무려 6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그는, 어쩌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조선시대 브런치 작가’였을지도 모른다.

늦깎이 합격, 그리고 계속되는 ‘현생’의 고단함​

노상추의 삶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는 무려 28년 동안 과거 시험에 매달린 끝에, 35세가 되어서야 급제했다. 오늘날로 치면 장기 취준생이 처절한 사투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셈이다.


처음에는 문과에 도전했다가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무과로 전향해서 급제했다.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전과자’였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관직 생활은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았고, 그는 일기 속에서 피로감을 숨기지 않았다. 상사와의 갈등, 뜻대로 풀리지 않는 행정 업무, 그리고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

그 감정들은 21세기 직장인의 번아웃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관직에 몸담은 지 수년이 되었으나, 얻은 것은 병뿐이요 잃은 것은 본심이라 세상일은 어그러지고 내 뜻은 펴지 못하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자녀 교육과 노후 불안이야 말로, 시대를 관통하는 고민이다. 그의 일기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대목은 역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다.

“자식 놈이 책을 잡고도 딴생각을 하니,
내 마음이 불길 속에 있는 듯 타들어 간다.
가문의 앞날은 이 아이에게 달렸거늘, 어찌 이리도 무심한가.”

관직을 그만둔 뒤의 생계와 노후에 대한 두려움도 솔직하다.

“늙어가는 몸으로 돌아갈 곳을 생각하니 막막할 뿐이다. 쌀독은 비어가고 자식들은 장성하지 못했으니, 장차 어느 곳에 의지하여 남은 생을 보낼 것인가.”​

이 문장들은 그를 위엄 있는 선비가 아니라,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는 지극히 평범한 50대 남성으로 우리 곁에 데려다 놓는다.

그를 ‘조선의 브런치 작가’라 부르는 이유​

그를 오늘날의 브런치 작가와 비견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기록 방식 때문이다.

솔직한 감정의 배설과 공유
그는 자신의 치부와 불안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일기는 일정 관리용 기록이 아니라, 내면을 어루만지는 에세이였다.

일상의 콘텐츠화
먹은 음식, 만난 사람, 날씨, 그리고 그날의 기분까지. 평범한 하루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방식은 오늘날 브런치 ‘일상 에세이’의 원형에 가깝다.

꾸준함의 힘
플랫폼도, 독자도 없던 시대에 68년 동안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강한 ‘기록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붓을 들어 하루의 일을 적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이 비로소 가라앉고
세상의 소란함에서 멀어지는 듯하다.”


다시, 붓을 드는 마음으로

노상추에게 일기는 ‘흔들리는 나를 붙잡는 닻’이었다. 지천명에 이른 우리에게 그가 건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삶은 원래 고단하고,
불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으며,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는 것.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의 한가운데서 한 발 물러나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노상추가 매일 붓을 들어 자신을 구원했듯,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각자의 키보드 위에서 ‘오늘’이라는 역사를 쓰고 있다.

우르르 몰려가던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이제 자기 방식으로 후반전을 풀어갈 그대여...
절대 외로워하거나 막막해하지 마라.
당신의 앞에, 이미 노상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