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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Aug 01. 2018

남프랑스에서 만난 위대한 화가들

부제 - 9개월 아기, 남편과 함께 한 극기 훈련

그러니까 애초에 걷지도 못하는 아기와 함께 하는 3주간의 유럽 여행 자체도 빡센 것이었는데, 거기에 나의 미술기행까지 덧붙인 것이 무리긴 했다. '그동안 못 보았던 미술관도 꼼꼼히 보고, 남편이랑 아기랑 예쁜 사진도 많이 찍어야지!'라는 결심은 여행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미 지쳐버렸기 때문에 개나 줘버렸고... 그래, 대충 여유 있게 미술관 몇 개만 둘러보자. 아기만 안 아프면 되지 뭐! 라며 쿨하게 떠났지만 막상 가서는 좋은 곳들이 너무 많아 더러운 욕망으로 여행 일정이 점점 물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여행은 아기를 데리고 하루에 차 이동시간만 4시간, 총 13시간 동안 돌아다니는 극기훈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기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 카시트에서 자고 (지금 생각해도 안 아픈 게 다행) 데우지 못한 분유를 길에서 벌컥벌컥 마셨지만 (근데 더워서인지 너무 잘 먹음)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며 여행을 따라주었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들고 누구 하나 안 아프고 큰 사건 없이 마무리되었다...라고 안도할 여행 말미에는 드디어 가방 소매치기를 당함^^ 역시 유럽여행 최고의 추억은 소매치기다!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에어비앤비 숙소 열쇠까지 가방과 함께 도난당한 것이었다. 아기 먹을 것과 용품이 모두 숙소에 있었으니...


하지만 어찌어찌 숙소에 들어간 뒤 역시 가장 속이 쓰렸던 손실은 바로 핸드폰이었다. 이 여행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예정이었던 사진이 모두 담겨있는 핸드폰. 나중에 아이클라우드로 절반 정도 복원이 되었지만, 아직 정보가 많이 없는 여러 미술관의 작품들과 도시의 분위기를 담은 사진들... 그리고 내 카카오톡 프로필이 되어줄 허세샷들은 그렇게 모두 소실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엉망진창이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온 여행 계획의 시작은 이러했다.

여행의 기본 목표는 남프랑스의 크고 작은 미술관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남프랑스 지역은 예전부터 햇살과 날씨가 좋기로 유명하고 작고 예쁜 도시들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거장들 - 피카소, 고흐, 마티스, 샤갈, 세잔- 이 오랜 시간 살거나 머물며 작품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이 화가들이 작품이 많이 남아있고, 또 개별 화가를 위한 국립미술관도 많이 지어졌다.


이런 미술관들과 함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장소들을 직접 방문해 볼 수 있는 루트가 될 수 있도록 큰 여행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이에 더불어서 예전에 여행했을 때 제대로 보지 못했던,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대량 소장한 대형 미술관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단 아기가 있으니 이것저것 짐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매번 짐을 쌌다 풀었다 하며 공항을 왔다 갔다 하기에는 꽤 버거울 것이 예상되었다. 또 남프랑스는 큰 도시들을 중심으로 주변에 예쁜 작은 도시들이 둘러싼 구조라, 렌터카가 훨씬 편리하다는 조언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남프랑스 일정은 모두 렌터카를 이용하도록 하고 가능한 한 숙소에서 오래 머물며 비행기 이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여행의 가닥을 잡았다.


계획을 마무리 짓고 보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숙소에서 3일에서 5일 정도로 묵으면서 근교 도시들을 당일치기로 둘러보는 일정이 되었다.


숙소를 중심으로 보자면 이동경로는 크게 로마(4일) - 니스(5일) - 엑상프로방스(5일) - 리옹(2일) - 파리(3일)가 되었다. 로마에서는 예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지 못해 아쉬웠던 바티칸 박물관을 가고, 니스와 엑상프로방스에 가볼만한 미술관들이 많이 있었다. 파리는 루브르나 오르세 오랑주리 같은 대형 미술관들이 많이 있으니 꼭 들려야 한다. 리옹은 보고 싶은 미술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지 친구가 있으므로 방문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큰 루트 안에서 당시 컨디션이나 상황을 보고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하되 꼭 가야 할 곳만 아래처럼 리스트업을 했다.


-니스 시내 : 국립 샤갈 미술관, 국립 마티스 미술관

-니스 근교 도시

  앙티브 : 국립 피카소 미술관

  생폴 드 방스 : 샤갈이 살다가 세상을 떠난 도시, 매그 재단 미술관(현대 미술작품)

-엑상 프로방스 시내 : 세잔 아뜰리에, 그라네 미술관

-아를 : 고흐 주요 작품 배경지들

-아비뇽 : 앙글라돈 미술관을 포함한 작은 미술관들

-베르동 협곡 : 미술작품과는 상관없지만 유럽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하니 가보는 걸로.


크고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니 계획에서 크게 어그러진 점 없이 보고 싶던 미술관과 꼭 가고 싶던 도시는 모두 방문했다. 큰 미술관에서는 알고 있던 작품을 실제로 접하는 감동이 있었고, 작은 미술관에서는 몰랐던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아기와 함께 하는 여정에서 많은 호의와 도움을 받았으며 현지인들 많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남편과 개같이 싸우며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해 보는 좋은 경험도... 하하.

어쨌든 3주간의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이 닥치기까지 시간은 술술 날아갔고, 그렇게 여행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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