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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an 15. 2018

사랑의 섬이 있다면 어떤 곳일까

명화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  

나는 늘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스무 살이 넘은 이후 연애했던 모든 남자들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할 때 늘 상대가 결혼이 하고 싶은 사람인 지부터가 궁금했다. 왜 결혼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까? 너무나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부모님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집안도 아니었고, 아기를 꼭 낳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거나 딱히 죽을 때까지 하는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던 이유로 늘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모든 연애는 늘 결혼으로 가는 가도교였다. 그래서 연애의 모든 순간에 나는 너무나 진지하게 임했다. 나는 남자 친구가 말다툼 끝에 살짝만 소리를 질러도 '으으으 예비 폭력남편이다!!! 분명 다음번에 싸우면 귓방망이를 날리겠지!'라며 혼비백산 이별 선언을 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출장을 가서 50만 원 정도의 돈으로 카지노에서 놀았다는 남자 친구와는 '으으 예비 도박꾼 남편이다!! 나중엔 맨날 술 마시고 패면서 돈 가져오라고 할게 뻔해!'라는 이유로 이별했다. 물론 이 이유는 그들에게 함구했으므로 그들은 왜 헤어졌는지 지금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나는 이렇게 브런치에 쓴다) 이렇게 매사에 정색하는 여자 친구도 사실 유쾌한 상대는 아니었겠지.


또 내가 가장 잘 했던 것은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의 상태의 태도를 컴퓨터처럼 기억했다가 현재의 태도와 비교하기였다. '처음에는 하루에 10번 정도는 먼저 전화했는데 왜 해주지 않지? 식었나?''전에는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전화하지 않았나? 왜 안 하지? 식었나?' '주말에 약속을 잡는다고? 갈 데까지 갔네.... 곧 이별이 오는 건가?'. 끝도 없이 연애 초반을 돌아보느라 연애의 '지금'에는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상대의 모든 행동들에 혼자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내심 서운한 마음을 하나씩 쌓아 갔다. 이런 내 태도에 질렸던 사람들은 먼저 나를 떠났다.


사실 연애 초반의 그 폭발적인 에너지를 계속 끌어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증 환자이거나 로봇 아닐까. 정상인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에 치를 떠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나는 이렇게 스스로 고달픔의 무덤을 파는 연애들을 해왔다. 상대가 결혼까지 가는 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진 않을까 혹은 결혼까지 가기 전에 나에게 질려버릴진 않을까 늘 전전긍긍했던 내 연애는, 언제나 출렁다리 위에  있는 것처럼 혼자서 위태위태했다.


다행인 점은 내가 이런저런 연유로 차고 차였던 온갖 거지 같은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인품이 아주 훌륭한(폭력 남편이나 도박 꿈나무의 기질이 전혀 없는!) 남편과 결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글은 남편이 보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어쩌다가 한 번씩 과거의 연애들을 생각해 볼 때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앙투안 와토《사랑의 섬으로의 순례》 (1717년 작, 루브르 박물관 소장)


연인들의 모습이 단체로 등장하는 작품. 앙투안 와토의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라고 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8쌍의 커플들이 등장하고 있다. 각각의 모습으로 사랑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있다. 하지만 로뎅('생각하는 사람' 조각한  유명한 로뎅!) 작품을 보고 아주 흥미로운 해석을  적이 있다. 광경은 8쌍의 다른 커플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적인 움직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8단계로 나눠 그린 것이라고 말이다.



그 해석에 따라 그림을 보면 시작은 가장 오른쪽 커플에서 시작이 된다. 장미꽃 덩굴에 휘감긴 사랑의 신 비너스 상 앞에 한 남녀가 앉아 있다. 여자는 수줍은 듯 눈을 내리깔고, 남자는 거의 온몸을 여자 쪽으로 기대앉아 주절주절 계속 이야기하는 모습. 사랑이 싹트기 시작할 때 서로의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다음 두 번째 커플, 남자가 여자를 적극적으로 두 손을 잡아 일으키려 하고 있다. 남자가 강하게 주도해서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자도 다리에 힘이 좀 들어간 것이 보인다. 못 이기는 척하지만 금방 벌떡 일어날 것 같은 느낌... 아마 여자는 남자가 이끄는 손을 거절할 맘이 없을 것이다.



그다음 커플,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커플은 이제 상당히 가까워진 모습이다. 남자는 여자의 허리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렸고 여자 도그 손이 부담스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허리를 그러안고 앞으로 나가려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뒤를, 정확히 말하면 이전 커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랑의 절정의 순간에서 그녀가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그녀의 눈길에서 아쉬움과 여운이 보인다. 불타는 사랑의 첫 시작을 다시 그러안고 싶은 모습. 처음으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눈빛.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 나의 구질구질했던 연애사가 떠오른다. 가장 행복해야 될 사랑의 단계에서도 늘 과거의 더 뜨거웠던 순간들을 아쉬워하던 나의 모습이. 결혼이라는 목적지에 왜 가야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안하게 걸음을 떼던, 그래서 늘 과거를 돌아보느라 시간을 허비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고로 나의 사랑의 섬 순례는 질척 질척한 갯벌에서의 행군 같았던 거다.


이 작품은 한동안 작가가 처음 붙였던 제목과는 달리 '사랑의 섬으로의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저 여덟 커플의 뒤편으로 보이는 배를 타고 이들이 사랑의 섬으로 곧 여행을 떠날 것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듯이 작가가 붙였던 제목은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다. 즉, 남녀는 이미 이 섬에서 사랑의 순례를 했으며 이제 곧 그 사랑이 끝나고 이 섬을 떠날 것임을 암시했던 제목이다. 뜨거웠던 사랑의 시작의 순간과 그것이 조금씩 편안해지면서 잔잔해지는... 화가의 의도대로라면 저 배를 타고 떠나면 도착하게 되는 곳은 이별일까? 아니면 결혼일까?


어쨌든 나는 이제 결혼을 했으니 이제 저 여성처럼 망설이며 뒤돌아볼 일은 없다. 뒤돌아본다 한들 어쩌랴! 연애의 끝은 이별 통보 후에 오가는 구질구질한 한 밤 중 전화 몇 통이었다면 결혼의 끝은 복잡한 법적 절차다.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그래도 나는 결혼을 한 것이 너무 좋다. 결혼의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바로 더 이상 거지 같은 연애와 이별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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