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대표작은 과연 무엇일까?

<그림으로 화해하기> 출간연재 #2. 뭉크의 '태양'

by 미유

대학교 3학년 때 말 그대로 집이 망해버렸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빚이 생겼고,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삶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취업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철없던 대학생은 갑자기 모든 것이 막막해졌다. 집에 들어가면 자주 부모님이 싸우고 계셔서 괴로웠고 학교에 있으면 걱정으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디에 있어도 맘이 편치않고 늘 이유없이 초조했다. 머리 속은 늘 우울한 생각으로 가득한데도 쉬는 시간에 동기들과 웃고 떠들 때는 연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 인생에 이때만큼 비관적이고 나쁜 생각을 많이 했던 적이 없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차라리 삶을 포기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당시의 나는 다른 사람들은 과연 이런 시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어떻게 이겨냈을까 너무나 궁금했었다. 예술가들 중에서 고통과 불행을 가장 잘 이해했던 화가는 아마 뭉크가 아닐까 싶다.


뭉크의 대표작 = 절규
800px-The_Scream.jpg

뭉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절규'다. 온 하늘이 화염에 휩싸인듯 붉게 일렁이고 있다. 혼돈의 한가운데 한 사람이 두 손으로 귀로 틀어막고 입을 벌린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이다.


이 작품은 수많은 영화와 광고등으로 패러디 되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작품의 제목을 듣고 그림을 본다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뭉크는 이렇듯 불안과 우울에 대해서 어떤 화가보다도 탁월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


뭉크는 필연적으로 이런 감정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삶을 이야기할 때 고통과 불안, 정신질환과 죽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불행의 그림자는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부터 드리워졌다. 뭉크가 다섯살이 되던 해에 뭉크의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만다.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아내가 죽은 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종교에 잘못된 방식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엄격히 대하며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타고난 병약함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가정학습을 해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여렸던 어린 뭉크가 우울증으로 평생을 고생한 것이 당연한 유년시절이었다. 그리고 뭉크가 열 네살이 되던 해, 엄마같이 의지하던 누나 소피에가 폐결핵으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800px-Munch_Det_Syke_Barn_1885-86.jpg


뭉크가 투병 중의 누이를 그린 작품, <아픈 아이>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픈 소녀의 옆에서 한 친척 여성이 소녀의 손을 잡고 곁을 지키고 있다. 색감이 어둡고 붓터치가 몹시 거칠어 인물이나 사물의 형체가 분명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이 두 사람의 슬픔의 감정만큼은 더 없이 선명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안한 유년시절을 보낸 뭉크가 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그는 언제나 파탄에 이르는 관계만 맺었다. 그의 사랑은 그의 작품들처럼 늘 어딘가 불안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에게 세상을 늘 불안정한 곳이었으며 모든 관계는 고통의 서막과도 같았다.


800px-Edvard_Munch_-_The_Kiss_-_Google_Art_Project.jpg


뭉크의 작품 <키스>다. 살짝 걷힌 커튼 사이로 보이는 창밖에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한낮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두운 골방에 숨어 입을 맞추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은 하나로 합쳐질 듯 윤곽선이 뭉개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 사랑의 환희는 없다. 그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관계를 놓지 못하는 희망 없는 몸짓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그의 젊은 시절 그린 작품들에서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 같은 감정과 더불어 상처가 가득한 인간 관계가 어둡고 암울한 색채로 그려진다.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큰 누이의 방을 채운 죽음의 기운,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절망의 감정 등이 호소력 짙게 표현되어 있다.


뭉크는 이렇듯 늘 자신만의 어둠속을 헤매고 있었고, 그렇기에 인간의 '불안'을 어떤 예술가보다 잘 이해하고 작품에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그래서인지 그 또한 집안의 내력이었던 정신병력을 피하기 어려웠다.


뭉크는 그의 40대에 독일에서 열린 개인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그를 잠식해 온 정신질환은 그 이후로도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뭉크는 정신병원에 들어간 뒤 이미 세상을 떠난 고흐의 작품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엔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고흐였다. 하지만 뭉크는 자신보다 더한 고난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계속 쫓으며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눈부신 빛으로 그려냈던 그의 작품에 탄복했다.


몇 십년에 걸친 어둠의 세월을 지나온 뭉크는 누구보다 고통의 감정들을 잘 이해하는 작가였고 그를 표현한 작품들로 이미 성공을 이뤄냈다. 그런데 고흐의 작품을 만나고 뭉크는 고흐의 작품에서 희망의 빛깔을 본 뒤 자신의 삶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꿈꿨던 것일까. 이후에 뭉크의 작품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다.


뭉크의 대표작은 절규가 아닐지도 모른다?


전 세계인들이 뭉크를 사랑하는 만큼 그의 모국인 노르웨이에서 뭉크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이다. 국민화가인 뭉크의 초상화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 지폐에 자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작은 당연히 ‘절규’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폐를 보면 잠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폐에 등장하는 '태양'이라는 조금은 낯선 작품이다.


1000-norwegian-kroner-banknote-edvard-munch-reverse-1.jpg


노르웨이에서는 겨울에 해가 뜯지 않는 어두운 낮이 내내 이어지는 극야 현상이 있다고 한다. 한낮이 다 되어서야 해가 조금 보일 듯하다가 3시면 해가 지고마는 긴 어둠의 겨울. 그래서 겨울동안 해를 거의 보지 못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이런 겨울을 보낸 사람들이 봄이 되어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았을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오십대가 된 뭉크가 오슬로대학의 주문을 받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긴 겨울의 끝에 떠오르는 봄의 첫 태양을 그렸다. 고흐를 알게 된 뒤의 작품이다.


이렇게 밝게, 찬란하게, 주변을 장악하듯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이 또 있을까. 지겹도록 길었을 겨울동안 구석구석 남아있을 작은 눈덩이를 다 없애 버리겠다는 듯 태양은 밝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마치 뭉크가 길고 우울했던 삶의 후반에도 작은 희망의 빛을 보려 노력했던 것처럼.


뭉크에게 유명세를 안겨주었던 초창기의 어두운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눈부신 색채의 작품이다. 내게는 뭉크가 작품을 통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있지만 저 환한 빛으로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잘 되지 않더라도 힘을 내 볼거라고. 아마도 이 작품이 그 유명한 절규를 제치고 지폐에 오른 이유도 작품이 품고 있는 희망의 빛 때문은 아닐까.

800px-'Starry_Night'_by_Edvard_Munch,_1893,_Getty_Center.jpg

뭉크의 또다른 작품들이다. 위의 작품은 뭉크가 서른살에, 그리고 아래의 작품은 그가 육십이 넘어 그린 것이다. 두 작품의 제목은 같다. 바로<별이 빛나는 밤에>이다. 위의 작품에서는 별빛이 희미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닷가에서 검은 하늘을 집어삼키는 바다가 보인다. 뭉크의 그림자마저 어둠이 지워 버린듯하다.

800px-Edvard_Munch_-_Starry_Night_(1922–24).jpg

아래의 작품에서는 산등성이 위에 선 뭉크의 외로운 그림자가 보인다. 여전히 그는 어두운 곳에 홀로 서 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환한 불빛이 반짝이는 마을과, 하늘 위의 빛나는 별이다. 고흐의 ‘볓이 빛나는 밤에’를 떠올리게 하는 오른편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한다.



위태롭고 불안한 날들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오래 전 나와 같은 불화를 경험한
화가들이 주는 가장 확실한 위로
그림으로 화해하기-표지2.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취업 준비생의 막막함을 다룬 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