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생의 막막함을 다룬 명화

<그림으로 화해하기> 출간 연재 #1. 이름도 없이, 친구도 없이

by 미유


최근 수년간은 취업이 늘 어려운 일이 되어서, 요즘에는 '취업이 어렵다'라는 것이 마치 특별할 것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다. 실업률이 몇 퍼센트니, 실업자가 몇십 만명이니 하는 뉴스가 아무렇지 않게 매일 오르내리고 모두가 큰 감흥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내가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그 해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대기업들이 공채 인원을 대폭 감소시키고 중소기업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다지 성실한 학점을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근거없는 자신감만은 있어서, “에이, 설마 그래도 100개 정도까지 써야하겠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졸업학기 초반부터 넣은 30개의 지원서가 모두 서류에서부터 광탈(?)을 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수없이 많은 거절을 당하는 뼈아픈 경험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버린 듯한 비참한 기분이었다.


학기 말쯤의 나는 ‘이 따위 나를 뽑는 회사가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하하!’라고 친구들에게 진담 섞인 농담을 하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막판에 세 개의 회사에서 서류 합격을 했고, 면접을 본 뒤에는 모두 최종 합격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10년이 더 넘은 이야기다. 요즘의 취업난 소식을 들으면 친구들과 모두 ‘우리는 요즘 태어났으면 절대 직장 못 얻었을 거다’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세상 사람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나 길어지는 저성장의 시대, 더 나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시기에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로 느껴진다. 내게는 취업시기의 고달팠던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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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는 한 상점 안의 모습이 보인다. 각자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면 정중앙에 불안해 보이는 한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벽에 붙여져 있는 많은 그림들로 볼 때 이곳은 그림을 팔고 사는 화방이다. 착잡해 보이는 그녀의 오른쪽에는 도매상이 그림을 감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소녀가 직접 그린 작품을 감정 중일 것이다.


소녀가 머리에 쓴 검은 모자와 검정 드레스는 그녀가 최근에 상을 당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혼반지는 끼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므로 소녀와 옆에 서있는 남동생은 부모를 여의고 서로에게 의지해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처지일 것이다.


차가운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도매상은 작품에 그리 좋은 금액을 매겨줄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의 그림이 팔리지 않을 것이란 예감 때문인지 소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손으로 손뜨개 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래로 힘없이 떨궈진 시선과 불안한 손이 안쓰럽다.


타들어가는 소녀의 마음과는 달리 가게 안은 다른 세상이다. 모두 자신의 할 일에 빠져 있어서 이 소녀의 걱정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림이 팔리길 바라는 소녀의 간절한 소망과, 타인들이 시선이 대비되어 소녀의 흔들리는 눈빛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작품의 제목은 '이름도 없이, 친구도 없이’이다. 마치 그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압축한 것 같은 구절이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과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 누군가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명성이 있는 화가는 아니며 이러한 고통을 알아줄 친구 또한 주변에 없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는 에밀리 메리 오스본이라는 작가로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성공한 여성화가 중 한 명이었다. 뛰어난 그림 실력과 열정으로 그림을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큰 성공을 이뤄냈던 작가이다. 로열 아카데미에서 정기 전시회를 열고 자신만의 작업실을 살 수 있을 정도의 큰돈도 벌어들였다. 하지만 여성 화가의 성공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런 그녀에게도 그림 한장을 팔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화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회고에 기반하고 있다.


이 작품 속 소녀의 갈곳 잃은 구슬픈 눈빛을 볼 때면 불안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의 과거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삶 하나도 책임질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힘없는 발걸음이 기억난다. 작품 속 그녀의 모습에서 느껴지듯이, 예나 지금이나 아직 날개를 활짝 펴지 못한 모두에게 세상살이란 참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 다시 찾아올, 쉽지 않은 첫 출발과 두려운 첫 발걸음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이 어떤 날은 위안이 되기도, 어떤 날은 조금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에밀리의 작품 속 소녀처럼 열심히 살아가려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모두 밥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위태롭고 불안한 날들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오래 전 나와 같은 불화를 경험한 화가들이 주는 가장 확실한 위로


그림으로 화해하기-표지2.jpg <그림으로 화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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