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세레나데>, 구마다 지카보
거미를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 봤던 건 처음이었다. 몇 해 전 초여름의 해질 무렵, 우리 가족은 공원 산책길의 한 구석에서 한참 거미줄 작업에 몰두한 거미를 마주쳤다. 이전까지 나는 막연히 거미줄을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우아한 작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거미집을 만드는 일은 굉장한 막노동이었다.
그때 거미는 한창 초기 작업중이어서, 두 너른 공간 사이를 대각선으로 길게 연결하기 위해 멀리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세를 가다듬고...점프! 실패. 또 다시 다리를 그러 모았다가 힘을 모아서... 점프! 또 실패.
열 번이 훌쩍 넘는 그 힘겨운 점프를 계속 보다보니 나중에는 숨을 참고 점프의 성공을 바랄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거미가 반짝이는 거미줄을 휘날리며 드디어 반대편 나뭇잎에 풀럭 안착하는 것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웃음이 담뿍 담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작게 오예!하고 외쳤다. 우리는 10분 가량 지켜본 거미의 성공에 마치 우리나라 축구팀이 A매치에서 골을 넣었을 때처럼 기뻐했다.
작지만 큰 세상을 들여다 보는 일. 작가 구마다 지카보의 작품들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숨죽여 거미를 바라보던 그 마음을 떠올렸다.
구마다 지카보는 60세부터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6b연필과 작은 붓을 이용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사로잡았던 <파브르 곤충기>를 화폭에 그려냈다. 그는 작은 곤충과 생명들의 세계를 캔버스에 아주 큼지막하게 그려냈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마치 우리가 개미처럼 아주 작은 사이즈로 줄어 들버린 느낌이 든다.
그의 작품 <사랑의 세레나데>에서는 귀뚜라미 커플의 연애를 바로 눈 앞에서 지켜 볼 수 있다. 한 가시덤불 구석에서 귀뚜라미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검은색 커다란 눈망울에 서로의 모습이 비치고, 수줍은 한 쌍의 커플은 하얗게 흩날리는 눈을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맞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귀뚜라미 커플이 연애를 하고 있을까! <구원의 미술관>에서 강상중 교수님은 마치 이 귀뚜라미들이 '세상이 다 무너진다 해도 우리들만은 지금 이 우주의 구석에서 사랑을 나눌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표현하셨는데,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 그리고 이 귀뚜라미 연인이 최선을 다해 사랑의 순간을 나누고 있는 것이 왜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인간 세상은 엄청나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인간들이 벌여놓은 일들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그 뒤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운 느낌이 들때가 있다. 그럴때 한 발짝만 물러서 시선을 주위로 조금만 돌리면, 우리에게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없이 많은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으로부터 동물과 식물, 그리고 아주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이 지구에 발을 붙이고 함께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이 조그맣고도 거대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 작고 소중한 생명들의 힘찬 생명의 박동을 문득 느끼는 순간, 까맣게 메마른 마음 속에 이 세상에 대한 작은 애정이 다시 마음에 살짝 불을 지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