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밀어주기에서 세대 갈등을 목격하다
해외로 캠핑을 자주 다니는, 그래서 공용 샤워실을 많이 사용해 본 지인 (무려 여행작가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칸막이 없이 아우슈비츠처럼 때려 넣고 샤워하라고 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설마 우리나라밖에 없을라구... 중국은 화장실 사이에도 칸막이가 없다던데... 하면서도 몸에 핸디캡을 가진 나는 칸막이 없이 샤워해야 하는 우리네 샤워실이 심리적으로 다소 불편하기는 하다. 수영 강습 시간 전후에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가는 10대, 아니 10대보다 더 어린아이들부터 90대 노인들까지의 벗은 몸을 보는 일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일종의 관음증처럼 느끼지까지는 마시고... 바닥에 주저앉아 때를 미시는 어르신들부터 운집된 샤워족(?) 사이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까지, 처음 며칠 간은 샤워실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샤워실뿐 아니라 탈의실 역시 바글바글 무슨 명동 한복판에 옷 벗고 들어와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샤워실 내의 질서를 위해 써있는 문구들 역시 흥미롭다. 못 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라는 듯이 굵직굵직한 글씨로 써있는 내용은 "사람이 많을 때는 바닥에 앉아 씻지 마세요", "집에서 씻고 오셨더라도 반드시 비누샤워 해주세요", "자리 선점 안 됩니다!" 등등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 번은 토요일에 자유 수영을 간 적이 있다. 자유 수영 시간이라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랜만에 한가한 기분으로 씻고 수영복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북적댈 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모멘트를 경험하게 되었다. 내 옆에서 샤워를 하며 한담을 나누고 있던 두 여자분이 갑자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분명히 비누 샤워하라고 써있는데 안 그러는 사람들이 있어. 비/누/샤/워 인데 말이야!" 시선은 나를 넘어 내 뒤의 벽에 부착된 게시물을 보고 소리지르다시피 하는 말이었는데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이라는 것쯤은 바보 아니면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분명히 비누 샤워를 했고 비눗물기를 다 씻어낸 상황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한 모양. 그렇다고 나한테 한 말이 아닌데 그들을 똑바로 보고 "저 비누 샤워 했걸랑요" 할 수도 없고, 하여 그냥 무시하고 수영복을 입었다. 머리까지 샴푸를 하고 들어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수영을 하고 나면 반드시 샴푸로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수영모를 쓰고 수영하는 상황인데도 그럼 수영 전후 모두 샴푸를 하라는 뜻? (이 궁금증은 아직 풀지 못했다.)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고 박완서 작가의 책 제목이 떠오를 법한 아주머니들의 준법 정신은 이밖에도 꽤 많다. 이 날 수영을 하러 들어가니 평일에는 안 보이던 입간판들이 써있었다. 초급/중급/상급이라는. 수영 강습 받은 시간만 해도 10년 가까이 되는 내가 초급일 리야 없다고 생각했고, 나와 함께 하는 이들도 모두 접영까지 다 배운 터이니 아마 '중급' 정도 되겠지 하고 그 레인에 들어가서 한참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하는 분이 내게 묻는다. "이 줄에서 강습 받는 분 맞으세요?" "아니요" "그럼 원래 강습 받는 곳에서 수영하셔야 해요." 그녀가 가리키는 그 레인, 내가 평일에 강습 받는 그 레인에는 '초급' 간판이 있었고 나로서는 거기에 수긍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자꾸 레인을 옮기라고 강요하는데,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코치복을 입고 오가는 사람을 불러 물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초급 레인으로 가는 게 맞느냐고. 맙소사, 그 코치의 답변은 이러했다. "저희 수영장 초급 분들도 모두 접영까지 다 배우셨습니다." 그래, 나는 초급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전 8시 반으로 옮긴 상황에서의 자유 수영 룰은 또 달랐다. 일단 토요일에 강습을 받는 사람들이 대거 몇 개의 레인을 차지해서 입간판의 위치가 달라졌고, 한 레인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이 평일에 강습을 받는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 점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 이 수영장의 운영 룰은 언제 다 습득할 있게 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놓고 싶다. 누가 봐도 30대인 여성 (알고 보니 내 레인에서 함께 수영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리 프렌들리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 옆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80대 혹은 9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샤워를 하고 계시다가 30대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나 등 좀 밀어줄텨?" 비누 거품으로 버블버블 하고 있던 나는 그 상황을 명확히 목도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눈을 떴을 순간은 30대 여성이 할머니 등을 밀고 있는 광경이리라 짐작하면서 눈을 떴다.
그러나 30대 여성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닦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분노한 듯한 할머니가 비누가 잔뜩 묻은 스폰지를 들고 그 30대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할머니의 일설 "세상 참 야박하네... 등 밀어주는 것도 못해주는겨!" 30대 여성은 못 들은 척 하면서 샤워를 열심히 해댔고 할머니는 계속해서 투덜거리시다간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는지 그네를 붙잡고 다시 같은 요청을 하셨다. 등을 밀어주는 아주머니에게 이어지는 할머니의 서러운 하소연... "아니 등 좀 밀어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세상에나 그걸 다 거절당하네 내가... " 할머니의 이야기가 듣기 싫었던지 30대 여성은 샤워를 마친 뒤 수영장으로 들어가버렸고 할머니는 그 뒷모습에 끝까지 한 마디를 쏘아대셨다. "아직 앞 수업도 안 끝났는데 들어가서 뭐하려고!"
늙으신 할머니는 늙은 것도 서러운데 힘든 몸 이끌고 오신 수영장에서 박절하게 거절당한 일이 분하셨을 게다. 30대 여성은 초면에 남의 몸에 손 대는 일이 싫었을 수 있고... 두 분 모두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바가 아니면서 목욕탕 문화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 나 같으면 당연히 밀어드렸겠지. 낯선 풍경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지만 30대 여성이 나고 자란 문화에서 과연 공중목욕탕의 서로 등 밀어주기가 당연한 일에 속할까? 이래저래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흥미로운 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