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다시 시작한 수영
나는 암 생존자다. 19년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 수술 직전까지 신나게 해대던 새벽 수영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 한쪽을 절제하고서도 당당하게 수영장에 가서 샤워도 하고 수영도 하겠다고 큰소리쳤던 내가, 단 한 사람의 한 번의 시선 때문에 그 좋아하던 수영장을 안 가게 될 줄 몰랐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한 존재다. 평소처럼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서 샤워장에서 나오던 한 30대 여성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분명 내 절제된 가슴을 보고 놀란 것 같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든가 '어~'라든가 하는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건만 나는 그녀의 그 시선에 수술장 날카로운 메스보다 더 깊숙이 베어버렸다.
그리고 이후 수영을 가지 않았다. 정작 나를 베어버린 시선을 휘두른 그녀는 이 사실조차 전혀 알 수 없겠지만 나로서는 그 충격이 컸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몇 년간 함께 새벽 수영을 하면서 멤버십을 다진 다른 사람들과 수술 이후 현저한 체력 차이를 느꼈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을 배웠던 탓에 대학에서의 교양체육 시간에도 '어머~ 쟤는 왜 저렇게 수영을 잘해?' 하는 시선을 받았던 몸이건만 (내가 나온 여대는 유별나게 수영이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었다) 한동안 수영을 안 하다가 다시 2013년에야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의 초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영 조기 교육'의 효과일까? 나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같은 팀 내에서 "가장 빠른 발전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코치의 멘트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등생"으로 이름을 날리던 내가 수술 이후 체력이 떨어져 도저히 같은 멤버들과 진도를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은 내게 상당한 자괴감을 선물해 주었다. 가뜩이나 수술 이후 1, 2년 간은 체력 저하로 시시때때로 우울감이 찾아오곤 했던 지라 가슴 절제를 핑계로라도 수영을 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내가 다시 수영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말해놓고 나니 나도 웃음이 나지만, 길고 심해진 여름 더위는 나로 하여금 물 밑 세계를 다시 그리워하게 만들었고, 거의 5년 만에 (그러니까 암 환자들이 적용받게 되는 '산정 특례'가 끝나고 나서)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가니 아... 그 쾌감이란...! 마치 물고기가 물 밖에 살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느끼는 편안함이랄까. 내가 달고 다니던 아가미를 잊고 살았던 과거를 후회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수영을 다시 시작하게 된 지 이제 4개월. 워낙에 공사다망한 사회생활을 하는 나인지라 구민으로서 받을 수 있는 공공의 혜택은 찾아볼 여유도 없었고 찾아볼 생각도 안 했었는데, 구립체육센터를 찾게 되면서 거주민으로서의 자부심까지 생겼다. 이렇게 싸게! 이렇게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니!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구립체육센터에서 매일 수영을 하면서 월 77,500원밖에 안 낸다고 하니 다들 하는 말이 "와우... 거기도 그럼 경쟁률 엄청 세죠?"라며, 집 근처에서 그 가격에 매일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건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단한 혜택이라고 한다.
맞다. 경쟁률 세다. 그걸 몇 달 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수영을 등록할 때 구립체육센터의 분위기나 룰을 잘 몰랐던 나는, 더구나 시간이 꽤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던 나는 오후 2시 반을 등록했다. 지금에 와서 꼼꼼히 살펴보니 2시 반은 가장 수강생수가 적은 반이었고 (아무래도 일과 시간이다 보니) 그런 만큼 등록 경쟁률도 높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수영에 맛을 제대로 들인 내가 아침 8시 반을 끊었다가 그다음 달 정신 놓고 재수강 기간이 지난 '신규 회원 가입 기간'에 등록하려고 보니, 아뿔싸 이미 등록 인원이 찼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오후 4시 반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아침 8시 반을 끊기 위해 '구민 우선 등록 기간' 오전 7시 (등록 시간 알람을 맞춰놓았다)에 들어가니 와... 아침 8시 반 수강인원 총 160명 중 이미 148석이 차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름의 광클을 하여 간신히 아침반으로 재진입할 수 있었다. (마냥 기쁘다 :))
매월 15일부터 20일은 재등록생 (그러니까 원래 자기가 들었던 반을 그대로 듣는 사람들), 21일~22일은 '구민 우선 등록 기간', 그러고 나서 남는 자리에 타 지역 거주민이 들어갈 수 있다. 철저한 기존 이용자들, 거주민 우선 정책이다. 뭐 그렇다 한들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본인이 정신 차리면 원하는 시간대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있고, 구립체육센터이니 거주민 우선 정책을 펴는 것도 옳은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다시 돌입한 나로서는 앞으로도 매일 이 시간대에 수영을 하고, 수영장과 수영장 물 속의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결국 물 밖 세상이나 물 속 세상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 물 속으로 들어간다고 물고기들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 재미있는 일들을 이곳에서 곶감 빼먹듯이 하나씩 하나씩 풀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