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연극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 한 극단의 새로운 시도, <고래 in, Q!>

by 강윤주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수 기록 경신이 되고 있는 요즘, 연극인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 한 극단이 하고 있는, 신산한 시기를 신선하게 돌파하는 시도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극단 고래가 론칭하는 ‘인큐베이팅 공연 사업’이다. 주지하다시피 인큐베이팅이라는 말은 요즘 벤처 기업이나 인력 양성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기는 한데, 공연계에서도 인큐베이팅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작가와 연출을 발굴하고 이들이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치면서 관객, 평론가 등의 피드백을 받아 점점 더 진화해 가는 반가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적 자금 지원으로부터의 독립, 곧 민간단체로서의 재정적 자립은 모든 공연예술단체의 염원일 터인 바, 이를 실현시키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놀라게 되는 점은 코로나 때문에 공연장을 반밖에 채울 수 없는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그나마 확보되던 수입도 반 토막이 난 이 상황에서도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코로나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인큐베이팅 공연 사업’을 자체 재원으로 진행하는 극단의 뚝심이다. 극단 고래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20년 한 해 동안에도 매월 한 편씩 극단 연습실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고래10전”을 진행했는데 거기서 선정된 작품 두 편을 ‘인큐베이팅 공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그다음 단계로 끌어올려 이번에는 워크숍 공연과 달리 유료 공연으로 관객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워크숍에서 인큐베이팅을 거쳐 다시 정기 공연으로... 이 단계적 발전 과정은 벤처 기업을 안정된 기업으로 안착시키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 단계마다 투자자를 유치하는 기업 육성 프로그램과 다른 것은 애초에 투자금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일 터이다.

그렇지만 연극은 힘이 세다. 극단 고래에서 진행하는 ‘인큐베이팅 공연 사업’으로 무대에 오르는 작품 <성냥 파는 소녀에 대한 보고서> (이하 “성냥”, 연출 전형재)와 <10년 동안에> (이하 “10년”, 연출 김동완)는 모두 코로나 시대 예술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성냥”은 팔리지 않는 희곡을 붙잡고 살다 마침내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거리에 나가 희곡을 판매하는 한 예술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고, “10년”은 전염병 창궐로 인한 집단 모임 금지 때문에 한 슈퍼 지하에서 숨어서 연극을 해야 하는 아마추어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곡을 거리에서 판매하다니... 발상 자체가 정말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필 의도에 대한 질문에 전형재 연출은 “희곡이 팔리지 않는 시대다. 돈을 받지 않고라도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만 가지고 있다가 사장되는 희곡이 한두 편이 아니다. 배우로 수십 년 살면서 희곡을 집필해온 나로서도 이런 답답한 심경으로 ‘아예 시장에 나가서 희곡을 팔아 볼까?’라는 생각까지 했었고, 동시에 아사했던 최고은 작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연극 마지막에 ‘고맙네, 최 작가’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는 최 작가에게 하는 말이다.”라고 답변했다.

“성냥”은 이야기의 전체 틀거리 외에도 한 예술가를 둘러싼 그의 일상을 자세히 보여준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꾸려나가는 일이 예술가에게 얼마나 고단한지, 특히 그를 둘러싼 가족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와 더불어 암묵적으로 행사하는 압박은 어떤 것인지가 구체적이면서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전형재 연출이 사실주의 작품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시놉시스나 해설 등을 읽지 않고 와서 있는 그대로 봐주면 좋겠다. 서사적 연극이 아니라서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문득 연극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아 그게 이런 뜻이었을까?’하고 생각해볼 수 있다면 나로서는 만족이다.”라는 전 연출의 말에는 예술에 대한 그만의 관점, 그만의 철학이 묻어 있었다.

김동완 연출의 작품 <10년 동안에>가 붙잡고 가는 화두는 “소통이란 무엇인가?”이다. 전염병을 소재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와 직결시켜 생각하지만은 말아달라는 말이다. “이 작품이 전염병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염병은 소재일 뿐이지 주제는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 인간에게 지금 중요한 건 뭘까... 소통이 아닐까?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라는 것이다. 곧 연극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전염병으로 연극 공연조차 금지되는 세상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시대 연극의 의미는 작품성, 예술성을 다 떠나서 소통의 기제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10년” 연습 과정 중에 김동완 연출은 극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민연극 참여자들을 독려하러 참관을 갔다고 한다. 거기에 참여하는 시민배우들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고 했다. “10년”에서 연극을 하시는 분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택배 노동자 같은,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거든요. 아마추어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연습하다가 혹은 공연하다가 틀리면 그냥 웃어버리거나 실수한 티를 내잖아요? 아 그런데 내 공연에서 극중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이 ‘아마추어 성’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너무 매끄럽게만 연기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맞아, 저런 게 아마추어 연극인데, 하는 깨달음 말이죠. 그래서 거기서 또 한 수 배웠습니다 하하.”

수십 년 배우 생활을 하고 이제 연출까지 하고 있는 김동완 연출이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이 시대 연극의 의미와 아마추어 연극인들로부터도 연기를 배운다는 그의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연극은 힘이 세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도 아기는 태어나고 또 성장해 나가듯이 새로운 연극은 탄생하고 성장해가고 있으며 결국 무대에 오른다. 그 어느 곳보다 철저한 방역 조치를 통해 확진자 제로에 가까운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공연예술계는 4단계로 인한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술집은 2인 이상 가지 못하지만 극장에는 5인이든 10인이든 가서 거리를 두고 공연을 볼 수 있다. 공연을 마치고 술자리에서 감상평을 나누지 못하는 이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연 자체를 보지 않는 게 아니라 공연을 보고 나서 채팅으로, SNS로 공연에 대한 소회를 나누며 코로나로 인한 고립감과 답답함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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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에 사진_마트 안에서 몰래 연극을 하며 신나는 사람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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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 팔던 소녀’에 대한 보고서 사진_희곡을 팔고 있는 주인공 덕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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