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겠습니다!

나 홀로 코펜하겐 여행기 [0]

by MiddleMan

"과로 증상이네요."


몇 달째 잠을 많이 자고 푹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병원에 갔더니 '과로' 진단을 받았다.


평소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질 탓인지 몇 년째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고 바쁜 업무 탓에 종종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주말출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피곤할 때면 나약해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오긴 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원래 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라며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러다가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건 한 달 전. 아무리 잠을 자도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다. 사실 이건 5년 넘게 쉼 없이 일하면서 정작 내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한 당연한 결과였다.


잘 쉬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도 자기 관리의 하나라는 걸 깨닫고부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무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날에는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집에서 건강한 요리를 해 먹고, 마포대교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언제부턴가 내가 좋아하던 일들이 숙제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완수하지 못하면 그다음 날까지 마음이 불편했다. 잘 쉬려고 시작한 취미생활마저도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깨달았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그걸 지키는 데에 지독하게도 강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일정표에 적어놓은 것들을 모두 끝내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모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부터는, 나에게 진정한 휴식이란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모든 걸 내려놓는 시간'이라는 걸 새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함께 난 다시 길을 잃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지? 뭘 해야 하지? 진정한 쉼이란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머리에 쥐가 나서 생각이 둔해지는 순간,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어졌다. 그렇게 갑자기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덴마크행 티켓을 끊었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단 하루 만에 항공권과 숙소를 모두 예약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이건 전혀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당일치기로 나들이를 다녀오려고 해도 몇 주 동안 고심해서 결정하고, 1박 이상 여행은 최소 6개월 전부터 계획을 세우던 내가 2주 후에 잘 알지도 못하는 덴마크를 가겠다고 결정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다니. 계획에 집착하는 강박이 단숨에 해결된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원래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나저나 많고 많은 나라 중에 나는 왜 뜬금없이 덴마크였을까? 주변 사람들이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이다.

그런데 나는 도리어 되묻고 싶다. 꼭 모든 것에 이유가 필요할까?

그냥 가고 싶어졌다. 그냥!

정말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순히 덴마크행 항공권이 당시 제일 저렴했고, 남들이 많이 가지 않은 생소한 곳이라 더 끌렸다. 마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왠지 멋져 보였다. 그렇게 덴마크를 가기로 정한 거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고 다녀온 여행이었지만 생각보다 무지 좋았고, 30년 인생 최고의 여행지가 됐다.


그리고 왜 덴마크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가 됐는지 지금부터 기록해보려 한다.

자 이제 정말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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