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

나 홀로 코펜하겐 여행기 [1]

by MiddleMan

인천국제공항 2 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7시 반.

오후 12시 출발 비행기인데, 어딜 가든 남들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공항까지 가는 길에 변수가 많을 거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고,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체크인 카운터도 열리지 않아서 키오스크에서 Boarding Pass를 뽑아 출국장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출국심사도 빨리 끝나고, 탑승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8시였다. 출발은 12시인데,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지루해서 어떻게 기다리나 싶었는데 책 읽고 사람구경하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은 또 금방 갔다. 비행기 이륙 전 엄마, 아빠, 동생과 마지막 전화를 하고 드디어 출발.


비행기 타는 중 •_•


이번에 이용한 항공사는 에어프랑스였다.

에어프랑스는 처음이었는데 처음부터 느낌이 아주 좋았다. 승무원들은 아주 건장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여서, 혹시 하늘 위에서 사고가 나도 나를 어떻게든 살려줄 것만 같았다. 서비스도 최고였다. 나를 'Madam'이라고 부르며 대화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맞추며 내 말에 경청해 주셨고(태어나서 처음 받는 강렬한 아이컨택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만?), 승객들이 수시로 콜버튼을 누르고 이것저것 요구해도 전혀 귀찮다는 내색 없이 한결같이 응대하고, 기계적인 서비스가 아닌 친구를 대하는 듯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여러 차례 헤드뱅잉을 하며 졸다 보니 어느새 경유지인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비행기 환승도 처음. 샤를드골 공항이 워낙 크고 여권과 짐검사에 시간이 오래 걸려 1분 1초를 다투는 환승객들에게 악명 높은 공항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잔뜩 긴장한 채로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번 타고, 트램도 타고, 긴 줄에서 여권검사와 짐검사까지 하고... 내 몸집만 한 무거운 배낭이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땀이 줄줄 나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나는 온 정신을 노란색 'Transfer' 이정표에만 집중한 채 기계처럼 움직였다.


환승하러 가는 길 *_*


그렇게 모든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탑승 게이트에 도착.

뭐야 별 거 아니잖아?


5분 전까지만 해도 길을 잃을까 봐 비행기를 놓칠까 봐 혼자 잔뜩 쫄아서 종종거렸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한 척을 하며 빈자리에 앉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닥은 붉은색 카펫이 두껍게 깔려있고,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새까만 하늘이 그대로 보였다(뭐가 보였다기보다는 그냥 암흑이었지만)다. 어두컴컴한 밤, 나 혼자 낯선 공항에 덩그러니 있다는 사실이 아주 잠시 가벼운 향수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향수가 나를 이방인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낯선 공항의 지상직 직원들은 하나같이 장신에 검정 롱코트를 입고 깔끔한 올백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범접할 수 없는 그러나 닮고 싶은 포스가 느껴졌다. 세계 각국에서 온 승객들은 드넓은 공항을 가득 채운 채 탑승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를드골 공항은 정신없이 붐비는 동시에 다 같은 여행객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묘한 아늑함도 느껴졌다.


알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코펜하겐행 비행기 탑승 시작. 2시간만 있으면 덴마크에 도착한다니 너무 설렜다.

코펜하겐으로 가는 비행기는 꽤 작았다. 그만큼 난기류에 많이 흔들려서 무서웠지만 다행히 별 일 없이 안전하게 코펜하겐에 잘 도착했다.


코펜하겐 카스트룹 공항(코펜하겐 도착한 날에는 너무 피곤해서 사진이고 뭐고 그냥 바로 호텔로 향했고, 위 사진은 한국 돌아올 때 찍은 사진 :))


여기는 코펜하겐 카스트룹 공항. 도착하니 밤 11시 55분이었다.

첫날은 밤늦게 도착해서 일부러 공항 바로 옆 호텔을 예약했는데,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덴마크가 치안이 좋다고는 하지만, 칠흑 같은 밤에 낯선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있는 숙소까지 찾아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피곤해서 그럴 엄두도 안 났고.

카스트룹 공항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무지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북유럽 인테리어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공항에서부터 딱 알겠더구먼.

내가 예약한 호텔도 아주 아늑했다. 방은 넓지도 좁지도 않아 혼자 하룻밤 지내기에 딱 알맞았고, 화장실은 나름 커서 쾌적하고 편리했는데, 변기가 생각보다 높은 곳에 붙어 있어서 우리 엄마아빠처럼 다리 짧은 사람이 오면 조금 당황(?)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으로는 비행기 격납고가 보였고 TV를 켜니 덴마크어로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지만 그래도 적막한 건 싫어서 TV를 켜두고 집에 전화를 했다. 코펜하겐에 무사히 잘 도착했으니 걱정 말라고. 여긴 지금 밤 12시이고 지금 호텔에 들어와서 이제 씻을 거라고. 아 그리고 높은 변기 얘기도 빼먹지 않고 얘기했다. ㅎㅎ


두 번째 날.

아침 6시쯤 잠에서 깼다. 일찌감치 호텔 체크아웃하고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호스텔로 이동했다. 덴마크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여행객들도 이동하기에 쉽다고 하는데, 그래도 처음이라 그런지 티켓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탑승게이트는 어딘지 우왕좌왕 헤맸고, 다행히 저 멀리 움직이는 캐리어 군단을 따라가서 기차를 타고 무사히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했다.


어딜가든 길에 자전거가 세워져있고, 도로에는 널찍한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었다.


기차역에서 나와 제대로 마주한 코펜하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자전거였다. 얼핏 봐도 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이 도시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는 대신 자전거가 막히는 신기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코펜하겐에는 쓰레기가 별로 없었다. 술집이 밀집된 좁은 골목길은 조금 지저분했지만, 대체로 길은 깨끗하고 노숙자도 대마초 냄새도 없었다. 여자 혼자 다니기에 안전할 정도로 치안이 좋다고 하는데, 낮에는 확실히 그런 것 같고 밤에는 내가 외출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꽤 안전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낮이든 밤이든 어딜 가나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겠지?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호스텔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이었다. 호스텔 건물이 무진장 컸는데, 아무래도 덴마크에 오는 거의 모든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잠을 자는 것 같다. 1인실도 있지만 돈도 아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4인실로 예약했다. 아쉽게도 2층 침대로 배정. 오르락내리락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캡슐모양이라 아늑했다.


내가 묵은 호스텔. 침대 2층에서 잤다.


방을 같이 이용하는 사람들도 너무 착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들이어서 숙소에서 지내면서 불편한 게 전혀 없었다. 아, 딱 하나 불편한 게 있었는데, 방에서 내가 유일하게 시차적응이 안 돼서(나 빼고 모두 1-2시간 거리에 있는 유럽 친구들이었다) 매일 아침 5-6시면 잠에서 깨어 소리 나지 않게 조심히 움직이느라 애를 먹었다. 특히 새벽에 화장실 신호가 올 때(그중에서도 특히 '큰 일'), 소리로도 냄새로도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달리 내 장이 너무나도 활발해서 참 괴로웠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하루는 호스텔 1층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했는데, 거사를 치르고 딱 일어서서 물을 내리려는 순간 변기레버에 내 검지손가락만 한 지네가 기어올라오는 걸 보고 식겁한 이후로는 다시 칠흑 같은 새벽에 방 화장실에서 홀로 외롭고 조용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룸메이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난 매일 아침 쾌변으로 상쾌한 하루를 시작했다.


자, 오늘도 시원하게 배를 비웠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해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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