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첫만남

by 미들


-진짜 인간이 아니에요?

-아니래도. 아까 허공에서 나타나는거 못봤어?

-보긴봤는데, 그래도 안믿겨서요. 왜오신거에요?

-너 잡으러.

-저 죽어요?

-그래.

-아, 아직 30년도 못살았는데.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너무 행복해보여서. 너무 오만해. 불행에서 눈을 돌리고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잖아.

-오.

-합당하다고 생각해?

-아니요. 그래도 제 목숨인데 그런 이유로 죽는다니 좀 억울하네요.

-살려달라고 안해?

-빌면 살려주시나요?

-아니.

-그럼 소용 없겠네요, 뭐. 아픈가요?

-죽는거?

-네.

-방법에 따라 다르지.

-전 어떻게 죽이실 건데요?

-그건 선택권을 줄게. 골라봐.

-음… 특별히 추천하시는게 있나요?

- 나는 불이 제일 편하긴하지.

-아프잖아요.

-그래서 추천은 안할게.

-뜬금없는 얘기 일수 있지만, 진짜 예쁘시네요.

-나도 알아, 고마워. 그런다고 살려주진 않을거야.

-조금 노렸는데.

-티났어. 나 예쁜거야 당연한 사실이니까.

-아쉽게 됐네요.

-넌 대체 왜 그렇게 여유로운거야? 너 죽는다니까?

-후회할만한 인생을 살진 않았으니까요. 아, 혹시 차에 치어 죽는건 어떨까요?

-차? 왜? 그냥 돌연사도 있어. 원인불명의 심장질환.

-아, 그건 좀.

-왜?

-폼이 안나잖아요. 한번밖에 없는 죽음, 원인도 모르는 돌연사로 죽어버리긴 싫어요. 뭐 동물 구하려다가 차에 치여 죽는 멋있는 사람으로 죽고 싶어요. 가능한가요?

-뭐 그정도쯤이야. 고통스러운건 싫지?

-넵. 한번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한 10분쯤 뒤에 트럭 한대 불러줄게. 고양이도 한마리.

-제 목숨이 10분밖에 안남은건가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게 네 특기잖아. 10분이나 남은거지.

-그러네요. 혹시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나요?

-이제 와서?

-생각지도 못한 10분이 생겨난지라. 혹시 신인가요?

-아니? 신은 이런 시시한 일거리에 직접 내려오진 않아. 이유없이 누굴 죽이지도 않고.

-방금 제가 죽는 이유가 없다고 인정하신 건가요?

-그건 아까 설명했잖아. 너무 오만해. 어리석어.

-그런가요?

-지금도 그래.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긍정적인 척. 괜찮다는 척.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이해한다는 척. 마음속으로는 공포에 벌벌 떨면서 죽고싶지 않아, 죽고싶지 않아 소리치고 있는 주제에.

-제 생각도 읽을 수 있으신가요?

-아니, 추측이야. 틀렸어?

-맞추셨어요.

-인간들 다 똑같지 뭐. 너같은 사람 한둘 본게 아니야.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뭐라도 된것마냥 내가 이해해주는거지, 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지.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그렇게 살지 말걸 그랬네요.

-이미 늦은걸 어떡하겠어. 죽어야지 뭐.

-잔인하시네요.

-내가 좀 그래.

-그래서 진짜 정체가 뭐에요? 원래 인간이셨어요?

-난 인간이었던 적 없어,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에선.

-그럼 인간아니셨겠네요, 인간이셨으면 잊어버렸을리 없으니까.

-무슨 확신이야? 3만 5천년 전 쯤에는 인간이었을 수도 있지.

-인간이셨으면 앞으로 5만년을 더 산다고 해도 안 잊어 버리셨을걸요?

-하찮은 인간주제에.

-그래서 좋은게아닐까요?

-하여간, 그 태도가 싫은거야.

-그런가요? 사람으로 태어난 건 진짜 자랑할만한 일인데.

-악한 일도 대부분 사람들이 저지르는거야.

-그래서 더욱더죠. 그런 사람들도 있으니까 착한 사람들도 존재하는거 아니겠어요?

-없는게 낫지.

-맞긴하지만 모든 사람이 착할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인간들이 안되는거야.

-그러는 당신...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편하게 불러, 편하게.

-그쪽도 착한것 같지는 않은데요?

-착하다면 네가 죽을일은 없었겠지.

-제가 하고 싶은 말 이었어요. 저와 같은 이유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요?

-몰라. 꽤 될걸?

-정말 착하신 분이시군요.

-너 비꼴줄도 아는구나?

-제가 부처는 아니라서요. 제가 죽는다는 사실도 조금 화도 나는걸요.

-근데 화 안내?

-인간을 이해도 못하시는 분이 직접 죽이러 오셨다는데요 뭐. 제가 이해해드려야죠.

-또, 또. 너 같은건 백만년을 살아도 날 이해 못해.

-당신은 인간을 이해하시나요?

-이해 못하지. 시도조차 안해봤어.

-당연하죠, 인간이셨던 적이 없는데. 혹시 감정도 없으세요?

-그건 아닌것 같아. 지금 너한테 언짢음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거든.

-그거 다행이네요.

-방금 네 수명이 1분 감소했어.

-죄송해요.

-늦었어.

-혹시 몇분 쯤 남았나요?

-3분 정도.

-얼마 안남았네요. 혹시 다른 분들한테도 이렇게 시간을 많이 주셨나요?

-10분씩이나 준건 처음이야. 이렇게 오래 대화하는것도 처음이고. 보통 너 마음에 안들어, 죽일거야 라고 얘기하면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하다가 쾅. 꽥.

-네, 훌륭하시네요.

-고마워.

-저랑은 왜 대화하시는건데요?

-그냥. 따분해서.

-따분함도 느끼시는게 조금만 더 노력하시면 사람도 되실 수 있겠어요.

-사람 같은거 되고 싶지 않아.

-이상하네, 드라마 같은거 보면 다들 인간이 못되서 안달이던데.

-그건 인간들이 만든거잖아.

-아, 그래서 그렇구나.

-똑똑한 줄 알았는데.

-하찮은 인간이잖아요, 이해해주세요.

-인간인게 자랑스러운거 아니었어?

-지금도 자랑스러운걸요. 혹시 사랑이 뭔지는 아세요?

-알긴 알지.

-그러니까, 해보셨냐구요.

-해봤을거같아?

-아니요.

-근데 왜 물어보는거야?

-궁금해서요.

-너 목숨 이제 1분도 안남은거 알지?

-그러네요. 후, 준비됐어요.

-이제 진짜 곧이야.

-역시 죽는건 무섭네요.

-정상이야.

-죽고 싶지 않아요.

-이제야 솔직해지는거야?

-죽을때가 오니 솔직해지네요. 보세요, 이제 눈물도 나잖아요. 안 울려고 했는데.

-아.

-왜그러세요?

-...

-괜찮으세요?

-몰랐어.

-네?

-네가 울 줄 몰랐어.

-전 울면 안되나요?

-말하는게 너무 담담해서, 죽을때도 그냥 담담하게 죽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조용히 우는건, 본적이 없어서.

-사람은 각자 다른 법이에요.

-살고싶어?

-네.

-많이?

-당연하죠.

-살려줄게.

-네?

-대신 가끔 나랑 대화나 해줘.

-뭐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셨어요?

-그냥.

-저 우는거 보고 맘이 약해지신거 아니구요?

-트럭 다시 부를까?

-죄송해요.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

-네. 다음엔 노크라도 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하여간 건방져서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