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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만남

by 미들

-똑똑.
-안녕하세요?
-네가 말한대로 노크하고 왔어.
-이미 제 앞에 나타나신 다음에 하시는 노크는 의미가 없지 않나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노크를 할 수가 없잖아.
-뭐, 그것도 그렇네요. 거의 한달만이시네요? 그동안 뭐하고 지내셨어요?
-그냥, 여기저기. 늘 하던대로 인간구경.
-인간 싫어하시는거 아니었어요?
-싫어해, 근데 어딜가든 인간뿐이잖아.
-깊은 바닷속이라던가, 높은 산꼭대기라던가.
-거긴 지루해.
-사실 인간 구경 즐기시고 계신거 아니에요?
-아니? 다 죽여버리고 싶어.
-그건 참아주세요.
-참고 있잖아.
-대체 진짜 정체가 뭐에요?
-나도 몰라, 그냥 어느날 눈떠보니 내가 있더라구.
-언제부터요?
-잊어버렸어. 아, 인간을 처음 봤을때는 뭔가 짓고있더라. 피라미드라고 하던가?
-인간들이랑 같이 살 생각은 안해보셨고요?
-인간들은 날 못봤거든.
-전 지금 보고 있는데요?
-내가 내 모습을 보이는 방법을 터득한지 얼마 안됐어. 30년 정도?
-세상에, 그럼 그동안 인간들 구경만 해오신거에요?
-뭐, 할수 있는거라곤 그거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 인간들을 봐오시면서 뭐 느끼신건 없고요?
-답답하다, 짜증난다, 화난다?
-답답하긴 했겠네요.
-그치? 이렇게 너희들한테 보일수 있게되면서 여러가지 할수 있게되더라고. 그래서 화나게하는 인간들은 꽝, 꽥.
-지난번 저 처럼요?
-그래, 너처럼.
-좋은 취미활동은 아니네요.
-30년쯤 하니까 질리더라.
-그래서 저랑 대화하시는거에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 나랑 대화해줘.
-저희가 지금까지 하고 있던건 뭐였죠?
-글쎄, 질의응답?
-처음하시는 대화치고는 말을 잘하시는데요?
-오래 봐왔으니까. 나라마다 말이 다른건 조금 귀찮았지만.
-그럼 전세계 모든 나라 말을 할줄 아시는거에요?
-대충은.
-대단하시네요.
-고마워.
-아, 그리고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뭐를?
-저를 왜 살려주셨는가해서요.
-말했잖아, 네가 울어서라니까?
-그땐 그렇게 넘어가긴 했지만, 저처럼 우는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을것 같아서요. 혹시 저랑 대화하는게 즐거우셨던거 아니에요?
-음, 글쎄.
-제가 맞춘건가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해둘게.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죽고 싶어진거야?
-아니요, 죄송해요.
-넌 말을 좀 가려서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런가요? 솔직함은 제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뭐든 도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지.
-조심해야겠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그러고보니 처음 만나셨을때 저보고 오만하다고 하셨죠? 너무 행복해보인다고.
-맞아.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지켜봤으니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지켜보신거죠? 제 사생활은요?
-쓸데없는 건 안봤으니까 걱정마.
-쓸데없는 건 또 뭐죠? 더 신경쓰이는데요.
-내가 뭘봤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
-음, 생각해보니 굳이 몰라도 될 것 같네요.
-그렇지?
-아무튼 그렇게 지켜봐주시는건 그만둬주셨으면 하네요. 앞으로 신경쓰여서 어쩌죠?
-내가 알바는 아닌것 같은데.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건 비겁한 일이네요.
-뭐, 너랑 나랑 같지는 않으니까.
-그럼 적어도 저를 지켜보실 때는 일종의 신호라도 주시면 안될까요?
-예를 들어?
-음, 무지개를 띄워주신다던가.
-너무 귀찮은데?
-그럼 머리 두번만 두들겨주세요. 그정도는 괜찮죠?
-그래 뭐, 아플 수도 있겠지만.
-제가 두들겨 달라고 한건 ‘톡톡’이라구요, ‘쾅쾅’이 아니라.
-알았어, 알았어.
-휴, 생각보다 어렵네요.
-뭐가? 나랑 대화하는게?
-아뇨, 초월자로부터 제 실낱같은 사생활을 지키는 일?
-아까부터 초월자라고 부르는데, 왜 그러는거야?
-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죠?
-음, 떠오르는 단어가 없긴하네.
-그렇죠? 신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초월자정도 되시는게 아닐까 해서요.
-무언가를 초월했다기에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거지만 말이야.
-그것도 그러네요. 다음에는 적당한 호칭을 생각해볼게요.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나 간다?
-안녕히 가세요. 또 맘에 안든다고 아무나 죽이지는 마시고요.
-내맘이야.
-어련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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