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를 따져봤자

사주팔자 읽씹하기 그 후 ②

by 정릉밈씨

간밤에 꿈을 꾸었다. 우리 집, 구 시댁, 일가친척들이 모여 누군가의 결혼식을 치르는 꿈. 전부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보는 사람들마다 나를 보며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현실은 꽤나 보수적인 양가 집안에 이혼을 강행,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관점에서의) 오점을 안겨 준 자식인데 말이다.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꿈의 모습에 잠에서 깨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근 2년간 겪은 일들을 시간 순으로 주위에 털어놓을 수는 있었지만, 슬프다는 둥 힘들다는 둥 사소한 내 안의 진짜 감정들까지 털어놓긴 어려웠다. 알려봤자 뭐하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봇물 터지는 감정들을 흘려보내려고 몇 날 며칠 폭음을 하기도 하고, 되려 잊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새 같은 장면을 곱씹는 그런 나날들을 보내다가 글을 통해, 글이라는 것을 쓰게 되면서 생각 정리를 하게 되었다. 짧고 미숙한 문장 덩어리들이었지만 고인 응어리를 토해낸 심정이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나는 생각지도 못한 개꿈을 꾸고 마음 정리를 하려고 한 시간들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속이 울렁거리고 말게 되었다.


새벽 2시에 눈을 떠 곧 아침 8시를 맞이한다. 결국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노트북을 켰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들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 받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고 결혼했는데, 갑자기 왜 배우자의 외도를 겪어야 했으며 왜 맞아야 했던 것일까?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서프라이즈!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쓴 글들은 다 제 망상이었어요!'라고 한다면 진작에 알아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들이 있을까? 작정하고 속이는데 당해낼 사람 없다. 뭐, 남자 보는 눈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당사자에게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성적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와 유사한 소리가 되지 않을까? 믿어 준 사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속이는 사람이 잘못된 것이다.


"걔는 왜 그런거래? 너한테 미안하다고는 했어?"


아니. 안 했다. 외도를 당한 것도 나, 맞은 것도 나인데 되려 위자료를 요구했다. 내 거도 내 거, 네 거도 내 거가 이런 것일까 싶었다. 객기인 줄 알았는데 몇 번 접선하고 보니까 진심이었다. 본인 주위의 사람들이 왜 본인 편을 들어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 멘붕인 눈치였다. 보다 못한 내 변호사가 거짓말을 멈추고 내게 사과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소용없었다.

한 번 그의 오랜 지인이 어렵게 입을 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거짓말에 빠져 사는 스타일이라고.

저런.. 살면서 어떤 아픈 일을 겪었길래 그런 현실도피를 하게 되었을까? 아니 현실도피를 할 만큼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되었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특정 피해를 입은 사람이 가해를 한 사람을 향해 도대체 왜 그랬냐며, 이유라도 알자며 붙들고 물어지는 장면을 볼 때면 종종 예전의 나와 겹쳐 보인다.

가정환경이 나빠서? 무언가 살면서 가슴 아픈 일을 겪어서? 그럼 그런 일들을 겪은 사람들은 전부 누군가를 괴롭게 만드는 것인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가?

음.. 그저 괴로운 현실을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갖다 붙인 이유일뿐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막상 아무 이유 없이 괴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상대에게서 조금이라도 특이점을 찾아 꼬리표를 붙여야 안심이 되겠지.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남을 찔러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뭐가 잘못인지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화가 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세계이고 정의이다. 잘못된 것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남을 괴롭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나 걔 사과 필요 없는데? 굳이 신경 쓰며 살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용서하지도 않을 거야. 정말 미안하면 추가 위자료나 챙겨줬으면 좋겠다."


내가 보는 세상은 모순 투성이이다. 아무 노력도 없이 우연히 큰 성공이 이뤄지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괴로운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어날 일은 그냥 일어난다. 무슨 수를 써도..... 굳이 엮어서 언급하자면 오랜 시간 공황장애에 시달려 왔다는 그와 뜬금 내 가정에 끼어든 제3자 그녀의 하소연 또한 불쉿. 정상참작이라는 것은 정말 정말로 특수한 경우에만, 예를 들어 11년 동안 치매 노모를 돌보느라 가세가 기울어졌음에도 제도의 허점으로 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노모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친 어느 일본인 아저씨 같은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다시 한번 나를 다독이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 본다.


선명해진 창밖의 아침 햇살까지 그대로 눈에 담으며 다시 못 이룬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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