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결혼은 했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면서도 약간 마음에 찝찝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미혼이라 답한다. 가끔 여기저기 지나가다가 결혼 생활 당시 둘이 함께 들렀던 장소나 놀러 갔었던 곳을 지나치면 예전 생각이 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은 느낌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죽은 나뭇가지를 끝까지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어느 새 이렇게 변한 건지.
얼마 전에 회사 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면부터 적대적이었던 사람의 모습이 잔상에 남아 선뜻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회사 생활인데 적대적이던지 말던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회사에서 마침 자신 있었던 포지션을 거머쥐게 되어 고생을 하게 되더라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 해도 가끔 내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장면이 오버랩되어 두려운 마음에 회피하고 싶을 순간이 있긴 하지만 이내 곧 그 감정을 무시해버린다.
과거의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니까 앞으로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줄어들었다. 내 마음이 또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던 모습도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뭐 할지에 대한 꿈도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 과거를 잊으니 미래를 바라보게 된 거다. 그러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누가 봐도 바른 말이 맞는 말인가 의심을 하는 쪽으로 불똥이 튀었다. 살면서 과거를 반성해야 할 사람이 과거를 깡그리 뒤로하고 잘만 지내는데 그런 사람들도 미래가 없는건가?
어떻게 사람이 그런 짓을 해놓고 조금의 반성의 기미도 없을 수 있지?
응. 애초에 잘못을 안 했다고 생각하니까.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하나의 추억거리쯤으로 생각할 거고, 과거의 일을 쉽게 뒤로할 수 있으니까 뻔뻔하게 살 수 있는 거겠지? 되려 이런 사람들한테 더 쉽게 미래가 있는 것 아냐? 이제 좀 과거의 파편을 놓았으면 좋겠는 사람들이야말로 오래도록 그것을 끌어안고 산다. 계속 슬퍼한다. 슬퍼하고 슬퍼한 다음..... 이제 그만 시선을 옮겨 앞을 바라봤으면 하는데 말이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실은 '잘못한 역사를 반성하지 않으면 밝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안다. 그런데 누구한테 하는 말일까? 아예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되려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잘못이라 생각지도 않는 쪽을 대상으로 이런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는 사랑의 잔소리 같은 말보단 과거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쪽을 대상으로 보듬고 보다 단단해질 수 있도록 격려하는 말들이나 쓰였으면 좋겠다. '기억은 하되 너무 곱씹진 말고 같은 일을 두 번 겪진 말자' 같은?
모르겠다. 나도 어떤 사람들에겐 상처를 주고 별 대수롭지 않게 까먹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