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에 절교선언을 받다 ②

우정이 뭐길래

by 정릉밈씨

밤 9시, 씻고 침대에 빈둥빈둥 누워있는데 갑작스레 전화가 울렸다. 동네 친구들이었다.

"밈씨! 나와!"

- "왜?"

"만나야 하니까. 보고 싶으니까. 우리는 이미 만나서 너네 집 근처로 가고 있어."

- "뭐어?"

집 앞까지 오고 있다는데 별 수 있나. 대충 옷 갈아입고 나갔다. 두 달 만에 만난 친구들은 이미 한 잔들 걸친 상태였다.

"이미 둘이 1차 했다면서 갑자기 왜 날 만나러 온 거야?"

넌지시 물었다.

"아 한 명 더 만나서 놀고 싶었는데, ○○한테 전화했더니 회사래서 너 만나러 온 거야."

- "아아 그렇구나. 꼭 나 아니어도 되었던거네?"


이런 식의 만남은 서로에게 있어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들과 앞으로의 우리들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서로 나누고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만남을 갖고 싶었다. 술 마시면서 시간 때우는 식의 만남은 더는 안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의 친구들과는 잠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몇 주 뒤에 LA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알다시피 근래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기에 머리를 좀 식히러 편도로 미국에 간다며.. 입국심사 통과도 안 될 거짓말을 했다. 다시 돌아오면 만나자고.


그 뒤로 잠시 LA에 다녀와서 SNS도 끊고 단톡창에 대답도 안 하고 정말 나에게만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 다른 친구들을 몰래 만나기는 했다. 어차피 알 턱이 없겠지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다시 나를 찾는 동네 친구들의 연락이 울렸다.

"한국 왔어? 만나야지."

- "응. 근데 내가 오자마자 자격증 시험도 있고, 시험 끝나고 나서는 바로 새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어. 그래서 만나는덴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해."

"그래, 그렇게 해. 어쨌든 우리는 무조건 만날 거니까."


무조건 만난다고? 마지막 말이 심히 거슬렸다. 나는 더 이상 그 무조건이 싫은데? 조금쯤은 유조건이고 싶은데. 그래서 절대 연락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하고 난 후에, 한창 유흥에 빠져 있는 친구들도 진정이 될 것이고, 적당한 시점에 다시 간간이 얼굴 보고 지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깬 나는 핸드폰에 자느라 미처 받지 못한 동네 친구들의 미수신 전화 표시와 우리의 단톡창에서 한 친구가 나갔다는 알림, 그리고 하나의 톡을 읽었다.


더 이상 너에 대해서 알고 싶지가 않다. 그냥 나중에.. 개인적으로나.. 연락하자.


취했나?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으나 대충 나를 향해 절교선언 비슷한 것을 한 것이란 건 이해했다. 맙소사! 학창 시절 친구들은커녕 남자친구랑도 이런 식으로 헤어짐을 고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지난 몇 달간 같이 술을 못 마셔서 많이 서운했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나에게 술 마시면서 헛되이 보낼 시간 같은 건 없다. 어차피 끊어진 인연 같은데 다시 잇는 것도 뭣해져 그냥 그대로 읽씹하고 다시 잤다. 그날 낮에 친구에게 미안하다며 절교선언 번복 연락이 왔지만.. 그것도 읽씹했다.


그러자 며칠 뒤에 다른 동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과를 받아줬냐며.

아니? 화난 적도 없지만 지금의 내 생활과 일에 재미를 붙이고 매진하고 싶어, 예전처럼 어울려 주기 어려워 그냥 이대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답장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신기하네. 우리 나이가 되어서 일에 재미를 붙이다니.'

우리 나이? 너네 혹시 정년퇴직 나이를 35살로 착각하고 있는 거니? 정년퇴직했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인생으로 삶을 이어가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친구의 연락도 그대로 답장하지 않고 읽씹했다.


이혼 스트레스와 한때 힘들었던 회사 생활 시기의 아픔을 나누어 주었던 친구들에게는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상태로 그대로 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컷 넋두리 한 후에 함께 달릴 준비를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사람의 생각은 각양각색이니까 그들의 방식도 존중한다. 나는 나대로 내 나이 35살이 여전히 일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삶을 일굴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그라들 때까지 계속 불꽃을 피우려 노력해 볼 생각이다. 그러니 어린 시절 친구들아!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이런 나를 응원해 주면 고맙겠어. 그전에 이번엔 내 쪽에서 절교선언을 할게.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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