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혼 사유 ①

by 정릉밈씨

단발성에 그친 폭행, 늦은 귀가와 잦은 외박으로 인한 이혼청구소송은 변호사들 입장에서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케이스가 아녔다. 그들은 배우자에게 또 다른 유책 사유가 없는지 물었고, 짧은 혼인 기간으로 인해 투입되는 리소스 대비 얻을 수 있는 위자료가 낮기 때문에 협의이혼할 것을 거듭 권유하였다. 나는 법률 상담 앱을 통해 겨우 나를 도와줄 개인 변호사 한 분을 수임할 수 있었다. 법조인들 눈에 다소 초라했던 내 이혼 사유는 '가정 폭력과 배우자 유기로 인한 정신적인 폭력'이라는 전문적인 문구로 바뀌었다.


2차례에 걸친 이혼조정 단계에서 나는 이미 남편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던 지난 협의내용을 똑같이 되풀이하였다. 그는 호적정리만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시 내게 위자료와 재산 분할을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나는 결혼 준비 시점부터 별거 전날까지 서로 부담한 비용 내역을 정리한 문서를 내밀었다. 그가 늦은 귀가를 할 때 벌금 개념으로 생활비를 조금 더 지불하게 한 것을 제외하곤 우리는 모든 비용을 동등하게 부담했다. 내 입장에서는 재산 분할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불성설이었다. 그가 분할 요청하겠다고 하는 재산 내역에는 생뚱맞게도 우리 결혼과 전혀 관계없는 내 혼전 재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정위원들은 아직 어린 나이의 사람들이 소송이혼하는 것은 할 만한 경험이 되지 못한다며 서로 양보하여 적당한 합의 금액을 맞출 것을 제안했다. 나는 계속 고수해 온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대로 조정은 결렬되어 소송 단계에 돌입하게 되었다. 남편은 정확한 재산 분할 요청을 위해 내 통장 거래내역 조회를 진행했다.


남편의 통장 거래내역 조회는 내게도 자신의 통장 거래내역 조회를 할 빌미를 준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드디어 그가 어디서 무얼 하고 다녔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철야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그는 모텔에 있었다. 연휴 전후로 데이트 스팟에 있었다. 주말 오전 야구 동호회를 마치고 특정 동네 유명 식당과 편의점을 이용했다. 그리고 특정 인물에게 간간히 송금을 한 내역이 있었다. 그 특정 인물은 나의 이전 직장 동료이자 당시 그의 직장 동료로, 앞서 언급한 특정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A양이었다.


소송을 준비하며 A양에게도 전화를 걸어 남편과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걸로 들었는데 맞는지, 이름이 팔린 것은 아닌지 물은 적이 있다. 이름 팔린 것 아니라며 같이 술 마신 게 맞다고 답하는 그녀에게 꽤나 위화감 넘치는 말들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전과는 달리 직급은 뗀 채 내 이름만을 부르며,

"○○님, 이혼하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 젊고 창창하신데 같은 여자로서 참 안타까워요."

"근데 작년에도 남편분 연락 안 된다고 혹시 같이 회식 중이냐고 연락하신 적 있죠? 저 그거 정말 불편했어요. 저 회사 여자 상사들한테 유부남이랑 자주 술 마시는 거 아니라고 3번 정도 불려가서 혼났어요."

나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응수했다.

"그러면 새벽까지 남편이 연락은 없지, 집에는 안 들어오지 제가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경찰에 실종 신고라도 했어야 했나요? 목석같이 집에서 가만히 기다렸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제 이혼 하나도 안타까우실 것 없어요. 그냥 길 가다 어쩌다가 어깨빵한 것 같은 거예요."


이런 대화를 나눈 뒤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녀의 동네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같은 식당 안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도 나를 발견하였는진 모르겠지만 바로 얼마 전 나눈 불편한 대화로 인해 특별히 아는 체하진 않았다. 단지, 그녀가 그녀의 동석자와 공공연하게 딥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는 봉변을 당했을 뿐이다.


남자친구인 것 같은데, 근데 애초에 남편 회사에서 나도 아는 그분과 오래된 사내 CC로 알고 있었는데.. 얘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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