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 특정 동네에서의 거래 내역은 외도 정황이 될 뿐이지 외도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내 변호사는 의뢰인인 내 앞에서도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외도 정황은 있으나 증거가 없었다. 문득, 여느 때와 같이 남편이 연락 두절인 상태로 귀가하지 않고 있었을 때, SNS나 하면서 연락을 기다릴까 하던 찰나에 그가 A양의 게시물들에 좋아요를 누른 알림을 발견한 기억이 났다. 당시엔 SNS 알림에도 시차가 있을 수 있으니까 하며 무심코 지나갔는데, SNS로도 교류를 했다면 통장 거래내역에 맞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게시물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혹시나 싶어 내 SNS 팔로워 목록에 있는 A양의 계정에 들어가 봤다. 천 장이 넘었던 그녀의 SNS 게시물이 몇 장만을 제외하고 전부 삭제되어 있었다.
'내가 내 남편과 지인을 너무 믿었구나.....'
지인까지는 모르겠으나 아내가 남편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게 당연한 건데, 웃프게도 나는 내 배우자를 절대 믿어서는 안되었던 결과를 맞이하였다.
당시 나는 소송을 위한 자료 준비의 일환으로 나와 그의 주변에 이런저런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연락을 취했던 관계로, 몇몇 사람들은 내가 집착이 심해 혼인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는 남편의 주장을 믿고 있었다. 당신이 유명 인사이거나 거액의 소송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의 변호사는 당신의 소송을 밀착해서 케어해 주지 않는다. 집착녀라는 눈초리를 받을 각오를 하고 직접 발로 뛰며 소송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단순히 집착녀가 되고 말기엔 억울한 마음이 컸다. 남편과 A양의 회사 블라인드에 명예훼손 혐의를 갖다 붙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수수께끼 같은 암시글을 남겼다. 아주 미약한 암시글이었기에 해당 회사에서 오래 재직한 몇몇 사람들만이 그 글의 숨은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의 글 조차 A양에게는 굉장한 압박이 된 모양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A양은 내 남편과의 불륜 관계를 시인했다. 이혼소송의 반소 취지는 '배우자의 외도와 가정폭력'으로 변경되었다.
A양은 내 남편을 만나며 오랜 사내 CC 관계를 청산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와 내 남편이 이혼소송에 돌입하자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들고,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친 내게 그 관계를 과시하였다. 내가 보고 있는 걸 알았는진 모르겠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내게 내 남편과의 외도를 의심조차 못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참 덧없구나. 오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깨트리고, 타인의 가정을 깨트리면서까지 가진 만남이라면 백년해로는 몰라도 도망치듯이 헤어지는 모습은 보여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주변을 망가뜨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면 이쪽도 깨끗하게 물러나 줄 수 있다. 그들의 당당하지 못한 모습에 나는 깨끗하게 물러날 수 없었고, 그동안 남편이 숨겨 온 이혼 사유를 찾아 이혼소송 청구 취지를 변경했다. 이제 나는 만족스러운가.
A양이 아니었더라도 남편은 다른 사람과 외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는 외도 이전에 먼저 내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다툼이 생길 때면 그는 입을 닫는 버릇이 있었다. 결혼 후 이 버릇은 싸움 현장을 피하는 버릇으로 바뀌었다. 그가 입을 닫거나 자리를 피할 때면 나 또한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더는 이야기할 가치가 없다 단정 지었고, 이 이상 이야기해 보았자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는 것 밖에 안된다 생각했다. 나는 그의 마음을 끝까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똑바로 마주하지 않았던 것. 이것이 법적 이혼 사유를 뛰어넘어 관계의 끝을 알렸던 시그널이자, 근본적인 '진짜 이혼 사유'이다.